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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이요? 첸은 컬러 아니예요? 걘 옷 입고 나오는 것만 봐도 엄청 화려하잖아요. 색깔 배치도 되게 좋고 센스가 좋던데. 컬러드요? 에이. 걔 14살에 데뷔해서 지금 18살인데요? 14살 때부터 걘 옷 센스 좋았어요. 걔 아이템 중에 무채색인 걸 못봤는데 내가. 그리고 아직 미성년자인데 각인 했음 발랑 까진 거지. 논컬러가 생명에 지장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급해서 벌써 각인을 해요. 진짜 논컬러였어도 자기 컬러를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도 모르는데.

 

도경수? 누가 봐도 논컬러지. 내가 살다 살다 그렇게 무채색만 입는 사람은 처음 본다. 논컬러도 어지간하면 컬러 컨설턴트 도움 받아서 색 조합도 잘 하고 논컬러 티 거의 안 내는데 걘 진짜 극단적으로 무채색만 입잖아. 걔가 컬러면 컬러의 비극이지. 그렇게 색채감각 없는 애가 컬러라니.. 걔 논컬러가 걔를 본다고 해도 걔가 자기 컬러인 거 알아나 보겠냐? 사람이 그렇게 무채색인데? 어휴. 안돼 안돼.

 

 

 

 


너와 나의 색깔

w.November (@v_november_v)

0.

 

세상은 세 가지 부류로 이루어져 있다. 컬러(Color)와 논컬러(Non-color), 그리고 컬러드(colored).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는 컬러와 논컬러 두 부류이고 두 부류가 만난 화학 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이 컬러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컬러는 색깔을 볼 수 있는 사람, 논컬러는 색깔을 볼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컬러드는 자신의 컬러를 만나 완전한 각인을 하고 색깔을 볼 수 있게 된 논컬러를 일컫는 말이다.

 

컬러와 논컬러의 사이에 남녀는 상관없다. 오직 색깔만이 존재할 뿐이다. 논컬러에게 컬러는 일종의 마약이다. 컬러를 만나면 늘 무채색이던 논컬러의 시야가 다채로운 색깔로 채워진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색깔을 만나고 나면, 논컬러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마약 중독자처럼 컬러를 찾게 되고, 컬러와의 각인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각인은 무엇일까. 각인은 말 그대로 ‘논컬러에게 컬러를 새기는 작업’이다. 보통 논컬러는 컬러가 주변에 실재(實在)할 때에만 색깔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각인이 완료된 논컬러, 그러니까 컬러드는 자신의 컬러가 주변에 없더라도 홀로 색깔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컬러가 옆에 있는 편이 좀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다채로운 색깔을 느낄 수 있지만 일단 컬러드가 되면 대충 이 색깔이 어떤 색깔인지는 판단할 수 있고, 본인이 옷을 고르고, 꽃의 색깔을 알고, 음식의 색깔을 알 수 있는 정도는 되기 때문에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각인의 방법? 간단하다. 성관계. 다른 말로 섹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그 사람의 색깔 형질을 묻는 것은 굉장히 사적이고 무례한 질문이다. 컬러라면 색채 감각을 타고난 데다 딱히 숨길 이유가 없는 질문이지만 논컬러에게는 폭력적이고 무례하다. 그래서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 질문은 하지 않는다. 다만 컬러는 자신이 컬러임을 은연 중에 드러낼 뿐이다. 대화로 글로 그리고 눈빛으로. 자신이 컬러임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감 있는 행동인 동시에 또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예의 없고 거만한 행동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우면서도 현명한 방법이 필요하다. ‘아, 그 티셔츠 색깔 잘 어울리시네요’ 같은 방법은 유치하다. 너무 직접적이다. 조금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1.

 

『이 주의 공항 패션, 과연 누가 1위를 차지 했을지 궁금한데요! 네, 바로 엑솜의 첸씨입니다! 첸씨의 공항 패션 매칭은 훌륭했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한 촉감이 눈으로도 느껴지는 린넨 셔츠에 성긴 마 재질이 눈에 띄는 4부 팬츠! 18세의 미성년자니까 입을 수 있는 거겠죠? 거기다 마지막 센스는 바로 잘 손질된 광택이 눈에 띄는 샌들과 동일한 재질의 가죽으로 된 클러치! 다소 성긴 재질로 룩을 연출하면서 매끈한 광택이 있는 가죽으로 엣지를 준 이 센스! 역시 첸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린넨이 시원한 촉감이라니 웃기는 말이군.

 

경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기는 말이지만 또 현명한 말이다. 저 촉새 같은 남자는 지금 은근슬쩍 자신이 컬러라는 사실을 흘린 것이다. 첸이 입은 셔츠는 우리가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색깔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입으로 털어 넣고, 경수는 손에 잡힌 캔을 와그작, 구겼다. 차갑다가 미적지근해진 캔은 이제 매끄럽고 또 뾰족하다. 마치 몇 시간 째 울릴 생각을 하지 않는 제 메신저에 화가 난 제 마음처럼.

 

경수도 분명히 알고 있다. 저 메신저를 울릴 사람은 지금 12시간은 걸리는 비행 중이고 아마도 달콤한 잠에 빠져 있으리라. 그러니 앞으로 적어도 여섯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는 절대 메신저가 울릴 일은 없다. 그 것을 잘 알고 또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또 집착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라, 경수는 한 번 더 핸드폰을 바라보고 또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초침은 이제 겨우 3바퀴를 돌았다.

무거운 발걸음이 침실로 향했다.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진 문이 묵직하게 닫혔다.

 

 

 

2.

E: 데뷔 동기가 특이하다고.

C: 그렇다. 태어났을 때부터 친한 형이 배우라, 그 형을 보러 촬영장에 갔다가 캐스팅 됐다.

E: 그 형이…?

C: 뭐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대로 배우 도경수씨다.

E: 와 그 동네가 미남의 원산지인가보다. 도경수에 첸이라니.

C: 하하하 경수 형과 같은 선에 놓이다니 영광이다. 그런데 나는 경수 형한테는 진짜 급이 안 된다. 형은 클래스가 다르다. 정말로.

E: 뭐 본인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반박은 하지 않겠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나?

C: 그냥,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경수 형을 따라다녔다. 무슨 새끼 오리 마냥 경수 형 뒤만 졸졸졸. 귀찮았을 법도 한데 경수형도 나를 참 잘 받아주고 잘 데리고 놀아줬다. 형도 동생이 없다 보니 나를 친동생처럼 잘 대해줬고 나는 워낙 챙김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양심도 없이 형이 잘해주면 좋다고 쫓아 다녔다. 지금까지도.

E: 첸씨 같이 귀여운 동생이라면 누구나 다 좋아할 거다.

C: 하하하 감사하다.

 

준면은 제가 보던 잡지를 덮었다. 한 달 전에 화보와 함께 진행된 인터뷰였다. 저도 모르게 통로 저편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인터뷰의 주인공이 세상 모르는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얼굴만 달랑 내어놓고는 항공사의 새파란 체크무늬 담요를 덮은 폼이다.

 

지금도 기억난다. 조그맣고 마른 남자아이가 최실장의 손을 잡고 연습실에 들어섰던 순간을.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저 숫기로 무슨 연예인을 한다는 건지, 싶어 어이가 없었던 것도 한 순간. 도경수가 죽어도 안된다는 걸 최실장이 몇 날 며칠을 따라다녀 겨우 캐스팅했다는 아이는 노래 실력이 발군이었다. 그저 작고 마른 남자아이라는 인상은 노래를 시작하면 싹 사라지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로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고작 삼 개월. 춤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던 아이에게 겨우 겨우 타이틀곡 안무만 익히게 해서는 해가 바뀌자 곧 데뷔를 했었다.

 

4년. 도경수가 아무리 김종대가 태어나 자라는 13년을 함께 했을 지언정, 쑥쑥 자라 제법 성인의 태를 갖추어 가는 사 년 간의 거의 매일을 준면이 함께 했다. 그래서 준면에게 종대는 유난히 더 눈에 밟히고 챙기게 되는 멤버였다. 안무를 따라가는 게 힘들어 저 혼자 화장실에서 엉엉 울고는 말갛게 씻은 얼굴을 하고 연습실로 돌아오던 게 종대라 더 그랬다. 그리고 가장 먼저 종대의 비밀을, 그리고 도경수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 준면, 본인이라는 점도 컸다.

 

종대는 지금 열 여덟 살이다. 해가 바뀌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될테고, 한 해가 더 지나면 성인이 된다. 그러면 종대는 어떻게 될까. 준면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종대에게 다른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 종대 스스로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생각은 할까? 한숨이 샌다.

 

도경수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아끼는 동생의 미래를 붙잡고 있는 것까지 좋아 보일 수는 없다.

 

김종대에게 도경수는, 마약이다.

 

 

 

3.

 

『컬러로 맺어진 커플로 유명한 예능인 박○○씨와 배우 이○○씨가 3년만에 이혼 소식을 알려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결혼 당시 컬러로 각인된 사이라고 밝혔던 두 사람은 사실 서로 파트너가 아니었으며, 각각 별도의 파트너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씨의 파트너가 임신을 하면서 두 사람은 이혼을 결정했으며, 컬러로 각인된 사이라는 말로 대중을 기만한 것에 대해 자숙의 시간을 갖기 위해 연예 활동을 일절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김○○ 리포터가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별 생각없이 틀어 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경수는 무심한 손길로 리모콘을 들었다. 간단한 손짓 하나로 전파는 차단되고, 공간은 고요해 진다. 며칠 전 무겁게 닫고 들어섰던 노란 문을 열자 침구에 푹 파묻혀 쌕쌕 숨소리만 내고 있는 존재가 보인다. 두꺼운 암막 커튼 덕분에 눈이 부시도록 밝은 아침 햇살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경수는, 이 평화로운 시간에 약간의 소란을 더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번째는 햇빛을 가로막고 있는 두터운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다.

 

차르륵.

 

커튼 고리들이 매끄럽게 커튼봉을 따라 이동했다. 뒤를 돌아보자 침대 위의 존재는 눈살을 찌푸리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기 시작한다.

 

 

“종대야.”

 

 

낮은 음성이 공간을 울린다. 목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종대는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리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일어나야지.”

“…히잉…”

 

 

어린 짐승이 앓는 듯한 소리를 낸다. 잠시 마음이 약해지려 했지만 경수는 마음을 다잡고 이불도 걷어냈다. 공항에서 곧장 이 곳으로 온 종대가 이 침대에 누운 것도 벌써 16시간 전의 일이다.

 

 

“오래 잤어. 일어나자.”

 

 

등을 다독이며 말하는 목소리에 종대는 두 팔을 뻗어 경수의 목을 끌어안았다.

 

 

“뽀뽀…”

“뭐?”

“뽀뽀해주면 일어날래… 아니면 싫어…”

 

 

잔뜩 칭얼거리는 목소리에 경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종대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경수가 잠을 깨우면 뽀뽀를 해 달라고 칭얼거렸고, 제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몇 시간이고 눈을 감고 그대로 누워있는 고집 센 꼬마였다.

 

 

“너 좋아하는 차돌박이 된장찌개 해뒀는데?”

 

 

그 말에 코를 킁킁거리면서도 절대 눈은 뜨지 않는다. 경수는 안다. 요 어리고 발칙한 꼬맹이는 제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결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경수의 입술이 보송한 종대의 뺨에 닿았다 떨어진다. 하지만 뺨에 닿는 뽀뽀는 이미 13살 이후로 종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게 된지 오래다. 눈을 꼭 감은 채 도리질치는 모습이 그 사실을 다시금 경수에게 알려준다. 가벼운 미소를 띈 경수의 입술이 이번에는 종대의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진다. 하지만 멀리 떨어지지는 않는다. 가볍게 몇 번이고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을 느끼고 나서야 종대는 슬며시 눈을 뜬다.

 

 

“만족스러워?”

“음. 만족한 건 아닌데, 내가 만족하는 수준으로 하면 우리 형아 힘드니까 내가 참아준다.”

 

 

맹랑한 말투에 결국 경수에게서 큰 웃음이 터졌다.

 

 

“나 밥 두 그릇 먹을 거야!”

 

 

두 그릇이고 세 그릇이고 원하시는 만큼 드시지요.

 

다람쥐 마냥 쪼르르 뛰어나가는 종대의 뒷모습을 보며, 경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볍게 닫히는 노란 문 뒤로 얼마 전, 종대가 공항에서 입었던 것과 같은 새파란 색의 린넨 침구가 흐트러져 있다.

 

강렬한 붉은 색과 하얀 색의 대비가 인상적인 주방 식탁에 앉은 종대가 발을 동동 굴렀다. 얼른 밥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천하의 도경수를 이런 식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것도 종대 외에는 없다. 종대가 자는 사이 가스렌지 위에서 충분히 끓은 된장찌개를 내려놓자 종대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경수가 직접 끓인 차돌박이 된장찌개는 종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다양한 원색의 식기와 눈이 아플 정도로 현란한 색상이 잔뜩 칠해진 액자, 그리고 선명한 녹색 티셔츠를 입은 경수가 마치 영화처럼 종대의 눈에 박혔다.

 

 

“음. 역시.”

“뭐가?”

“너무 보고 싶었어.”

 

 

밝게도 웃는 종대의 얼굴에, 경수도 함께 웃음을 보였다.

 

 

“이 색깔들이?”

“아니, 형이 있는 이 풍경이.”

 

 

 

4.

 

간난쟁이 시절부터, 종대는 유난히도 경수를 좋아했다.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구분 못할 그 시기에도 경수만 보면 그렇게 웃음을 짓고, 안아 달라 울고 보챘다. 그래서, 종대가 논컬러로 판정을 받고, 그런 종대의 파트너가 경수임을 판정 받았을 때에, 종대의 부모님도 경수의 부모님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물론 경수도. 온통 흑백이던 세상에 나타난 유일한 총천연색의 인간이 경수였으니 종대가 그렇게 좋아하고 따르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종대는 논컬러였지만 색깔을 아는 논컬러였다. 태어나서부터 파트너가 곁에 있었고, 색깔을 인지하며 살아왔다. 아주 어릴 때에는 경수가 곁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그 무채색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울고 화내고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경수가 늘 자신의 곁에 없는지, 왜 자신에게서 자꾸 경수를 빼앗는지. 경수는 꽤 헌신적인 파트너라, 온갖 짜증과 투정이 뒤섞인 종대의 행동도 모두 받아들이고 달랬었다. 오히려 종대가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해방감 보다는 상실감을 느꼈던 것도 경수였다.

 

 

 

5.

 

경수의 고민은 늘 하나였다.

 

 

 

6.

 

경수가 배우로 데뷔를 하고 입지를 다져감에 따라 종대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어졌다. 그래서 경수는 종종 종대를 촬영장으로 부르고는 했다. 친한 동생인데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 견학을 시켜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연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고서야 무채색의 옷을 입는 것도 종대를 위해서였다. 아무리 자신의 컬러라고 할지라도, 직접 보는 것이 아닌 이상 논컬러에게는 모두 무채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종대가 화면으로 본 자신과 실제의 자신에게 차이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늘 무채색으로 입고는 했다.

 

 

“형아!”

 

 

13살의 종대는 또래보다 작았다. 그래서 촬영장에 올 때면 한 달음에 달려와 경수의 품에 폭 안기고는 했다.

 

 

“잘 지냈어?”

“응! 형아 나 이번에 우리 합창대회 나가는데, 나 독창 맡았다?”

 

 

오랜만에 보는 종대는 눈을 반짝이며 경수에게 자신의 근황을 조잘거렸다. 그러면서도 눈은 끊임없이 사방을 보며 색깔을 담기 바빴다.

 

 

“잘됐네. 옷은 형이 말해준 대로 잘 입고 다니고 있어?”

 

 

그 무렵부터 경수는 종대의 컬러 컨설턴트를 자청했다. 매일 밤 종대의 옷 중 내일 입을 것들을 골라서 문자로 보내주었고, 종대는 다음날이면 충실하게 자신이 옷을 입은 모양새를 찍어 경수에게 보내주었다.

 

 

“응! 당연하지! 이거 봐! 오늘도 짜잔!”

 

 

선명한 주황색과 검은 바지의 조화는 누가 본다고 한들 종대를 논컬러라고 여길 수 있는 색조합이 아니었다.

 

 

“예쁘네. 잘 어울린다. 저쪽에 큰 거울 있으니까 같이 가서 옷 입은 거 직접 볼래?”

“그래두 돼?”

“당연하지. 가자.”

 

 

제가 입은 옷의 색깔을 꼼꼼히 보고, 경수에게서 예쁘다는 말을 스물 한 번쯤 들은 뒤, 종대는 경수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끌었다.

 

 

“형아, 내가아- 노래 잘하는 지 들어줘?”

“그래, 들어보자.”

 

 

어쩌면, 신은 종대에게 눈으로 보는 색깔을 허락하지 않은 대신 목소리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도록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만큼, 종대는 노래를 잘했다. 경수가 늘 그렇게 칭찬을 했기 때문에 종대는 경수에게 노래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고, 틈만 나면 경수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야외촬영장의 구석진 곳에서, 선명한 초록으로 빛나는 나뭇잎 사이로 종대의 목소리가 퍼졌다.

 

경수의 기준에서, 가장 일이 잘못 된 순간이었다.

 

 

 

7.

 

“진짜 밝힐 거예요?”

 

 

준면이 심각한 얼굴로 최실장에게 물었다.

 

 

“스무살이 된 종대가 원한다면.”

“실장님, 종대는!”

“니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최실장의 눈이 준면보다 더 진지한 빛을 띄우고 준면을 향했다.

 

 

“너보다 더 그 걸 걱정하는 사람은 도경수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경수는, 종대가 논컬러라는 걸 안 그 순간부터 그 걸 걱정했어.”

 

 

 

8.

 

“형은 내가 맨날 애기 같지?”

 

 

열 아홉 살이 된 종대가 경수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경수가 되물었다.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종대는 해외 스케줄을 마치고 귀국해서 언제나처럼 색깔로 가득 찬 경수의 집을 찾았고, 경수는 가장 선명한 색깔의 옷을 입고 종대를 맞이한.

 

 

“형이 뭘 제일 걱정하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경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종대가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음, 있잖아, 사실은 나도 맨날 헷갈렸어.”

 

 

빨간 식탁 위에 팔을 올리고, 그 위에 또 턱을 괸 종대가 경수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진짜 형을 좋아하는 게 맞을까? 그냥, 형은 나한테 색깔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내가 착각하는 건 아닐까? 왜 새끼 오리는 알에서 깨어나서 제일 먼저 본 사람을 어미로 착각하고 따른다잖아. 그런 것처럼 나도 그런 건 아닐까?”

“종대야.”

“맨날 맨날 걱정했어. 그런 거면 어떻게 하지? 형은 다정한 사람이라서, 내가 형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각인 해달라고 조르면 해줄텐데. 그러고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 사람한테 간다고 하면 우리 형은 말도 못하고 웃는 얼굴인 척 하고 보내줄 건데.”

“…..”

“근데 그러면 형은 상처받을 거니까. 그러니까, 만약에라도 내가 형을 사랑하는 게 아니면 나는 형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을 했어.”

 

 

경수는 마침내 종대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많이 자랐고 정말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종대 너는 어떻게 생각해?”

 

 

경수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했다.

 

 

“음, 내 결론은-.”

 

 

 

9.

 

E: 이번 화보는 좀 화려하죠?

D: 네, 그러네요. 반짝이는 것도 많고. (웃음)

E: 절제된 스타일링으로 유명한 편인데, 이런 스타일링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요?

D: 돌려 말씀하시지 않아도 돼요. 뭐, 많은 분들이 은근슬쩍 저를 논컬러라고 말하고 있고, 다들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제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화려한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E: 무례함을 감춰보려고 노력했는데 들켰네요.

D: 괜찮아요. 제가 그런 오해를 살 법 하게 하고 다녔으니까요.

E: 오해인가요?

D: (크게 웃으며) 네, 완벽한 오해예요. 확실하게 말씀드릴게요. 저는 컬러예요. 컬러드도 아니고, 태어났을 때부터 컬러예요.

E: 그러면 왜… (너무 솔직한 발언에 에디터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D: 음. 제 파트너가 화면에서 보는 제 모습과 실제로 촬영할 때 제 모습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E: 이 대답은, 파트너가 있다는 뜻인가요?

D: 네, 있어요. 각인은 하지 않았지만.

E: 파트너가 무려 도경수인데 아직 각인을 하지 않았다고요? 파트너가 조르지는 않나요?

D: 좀 특별하게 만나서요. 서로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하기 전에는 각인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E: 확신?

D: 정말로 사랑하는지, 아니면 그저 서로 파트너라서 끌리는 것 밖에 없는지.

E: 그저 파트너라서 끌리고 있는 거라면 각인을 하지 않을 건가요?

D: 아뇨. 제가 제 파트너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웃음) 파트너가 원한다면 각인은 할 거예요. 제 사람이 아니더라도.

 

 

 

10.

배우 도경수♥엑솜 첸, 열애 공개!

20**-06-24

 

배우 도경수(31)와 아이돌 그룹 엑솜의 멤버 첸(김종대, 21)이 기자회견을 열고 열애 사실을 공개했다.

 

24일 서울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도경수와 첸은 각각 컬러와 논컬러로 서로가 파트너임을 밝히며 열애 사실도 함께 공개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등장한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하며 서로가 파트너임을 알고 있었으나 서로에 대한 감정에 확신을 가진 것은 첸이 성인이 된 작년 이후”라며 “최근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각인을 마쳤다”고 말했다. 도경수는 “첸씨가 워낙 어릴 때부터 데뷔를 해서 논컬러라는 부분을 밝힐 경우 상처를 많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숨겨왔다”며 “많은 분들이 각인 시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는데, 첸씨의 사복은 늘 제가 코디를 해왔다”고 밝혔다.

 

열애 사실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서 첸은 “내가 감정을 확신하지 못해서 경수 형이 속앓이를 오래 했다”며 “앞으로 서로에게 더욱 충실하고 더 먼 미래를 함께 하기 위한 준비”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결혼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없다고 못박았다.

 

한편 도경수는 작년 한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은 컬러이고, 파트너인 논컬러와 서로의 감정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서 각인은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어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DOCN 선○○ 기자

 

 

 

11.

 

도경수의 고민은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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