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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lution

w. Mer 

"무섭니?"

 

약 기운에 스피커가 울리듯 단정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종대는 자신의 두 눈을 가린 손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금방 끝날거야."

 

그러면서 의문의 남자는 종대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이런,"

 

의문의 남자는 상처가 점칠된 손목을 가만 쓸었다. 오른손으로 종대의 눈을 계속 해서 가리면서.

 

"겁이 많은 아이구나."

 

남자는 종대의 뒷목과 어깨 사이 쯤에 가만히 입술을 가져다댔다. 종대는 감각이 죽은 듯이 축 쳐졌다. 약 기운이 제대로 올라온 탓이였다. 남자는 한숨을 쉬곤 어깨에 종대를 들쳐맸다.

 

 

"지네 회사에서 약이나 빼돌리는 약쟁이 새끼를 거둬서 뭐 하겠다는 거야"

"대장도 다 생각이 있겠지만 그래도.."

"아니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 새끼를 두고 간건데?"

 

백현은 발로 소파를 찼다. 백현 덕분에 소파는 이미 여기저기 발자국으로 도배된 상태였다. 자신의 성격을 못 이겨 주변 사물들이 다 저 모양 저 꼴이었다. 베타 백현이 오메가가 다수인 혁명군에 들어오게 된 것도 저 성격 덕분이였다.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그것도 kinn회사였다- 돈도 많이 벌고 베타 인생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오메가에 대한 처우나 알파들의 좆같음을 도저히 참아줄 수 없었던 백현은 결국에 억제제 제조법과 신약에 대한 실험보고서를 훔쳐 달아났다.

 

"kinn이 제일 아끼는 애야 우릴 곧 찾을 거야 우린 아직 전면전에 대해 준비가 안됐어"

 

맞는 말이였다. 수현은 소파에 뉘어진 종대를 측은하게 쳐다보면서 씩씩대는 백현의 팔을 잡았다. 백현은 아 모르겠다. 알아서 해 하면서 수현을 부축해 데리고 나갔다.

 

"대장,"

"일단 경계 단계를 좀 더 높이고 짐을 간단히 챙겨"

"알겠어"

 

찬열은 옅게 한숨을 내쉬고 문을 닫고 나갔다.

 

"이게 무슨 게임일까, 네가 좋은 조커일까 나쁜 조커일까"

 

대장, 그러니까 경수는 소파 맞은 편에 앉아서 kinn의 막내 아들 종대를 쳐다봤다.

 

 

"짐을 챙겨. 필요한 것들만 다른 것들은 모두 두고 간다. 비상 경계 2로 올리고 어린아이와 노인들은 지하에 나머지는 지상에 묵는다."

"형."

"박찬희 빨리 따라가"

"나는 형이랑 있을래"

"박찬희 형 말 들어."

"형아."

"장난 아니야. 박찬희 빨리 들어가"

 

찬열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소매를 잡는 찬희도 내려보냈다. 울고불고 하면 필요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버리고 간다는 말을 하며. 만약 빨간불이 들어오면 재빨리 지하 후문을 열어 도망치라고 하는 것 까지 잊지않으며

 

"수현아 너도 내려가"

"내가 짐인가"

"그런 뜻 아니잖아"

"알아, 너는 맨날 화만 내더라"

"내가 무슨 맨날 화만 내냐?"

 

동이트는 황야를 보며 백현은 담배에 한번 더 불을 붙였다.

 

"내가 남들처럼 빨리는 못 걸어도 사격 하나는 끝내주잖아"

"그러게 좀 돌아다니지마 안정을 취하셔야한다구요 환자분"

 

수현은 그렇게 말하며 소총을 어깨에 대며 저격 자세를 취했다. 백현은 담배를 문 채로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젓다가 몸은 뒤로 젖히고 고개는 위로 올려서 담배 연기를 뱉었다.

 

"경수가 다 생각이 있겠지"

"너 맨날 그 소린데 그 새끼 생각 존나 없다고 걔가 뭐 대단하냐?"

 

백현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끄고서 아무렇게나 던지고 뾰루퉁하게 대꾸하다 일어섰다.

 

"어디가"

"존나 나는 총도 못 쓰는데 밖에서 뭐해 총알받이 하라는 거냐"

"엉. 내 방탄복으로 쓰게"

"야 나 인텔리야. 이런 지적자원을 무식하게 쓰려고 하다니"

 

백현은 치를 떨면서 들어갔고 수현은 깔깔 웃었다.

 

 

황무지에 모래 바람이 일었다. 수현은 고글을 쓰면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낮이고 밤이고 R센터 새끼들은 언제고 쳐들어 올 수 있었다.

 

R센터는 알파 중에서도 우성 알파들이 모여 사는 부촌 같은 곳이였다. 지금은 오메가와 알파의 전쟁 덕분에 하나의 성처럼 그 의미가 바꼈지만 그 전에는 베타도 발 붙이기 어려운 곳이였다. 그 곳에 아이러니하게도 오메가가 모여 지내는 곳이 있었다. 지들 멋대로 L, I, F, E 이름을 붙인 네 곳이 있었는데 합치면 라이프 라는 꽤나 멋드러진 이름이 되는 시설이였다. L은 버려진 오메가들이 지내는 고아원 같은 곳이였고 I는 사창가였다. 힛싸가 온 오메가들을 노리개로 삼고 즐기는 곳. 힛싸가 오지 않더라도 그런 오메가를 강제로 유린하는 곳. 그리고 그런 오메가들이 성병이나 임신 같은 걸로 들어오는 F는 병원이였다. E는 좀 특이하게도 알파들과 결혼하거나 첩이 되거나 어쨌든 간택되려 들어가는 곳이였는데 꽤나 많은 오메가들이 여기에서 신분상승을 꿈꿨다. 우성 오메가는 아주 인기가 많았고 -우성 알파를 낳을 수 있음으로- 거진 모든 우성 오메가들이 E시설로 가려고 줄을 섰다. E시설에 들어가게 되면 간단한 테스트를 하는 데 예를 들면 히트사이클이 와도 약을 먹지 않고 참을 수 있는 가 없는 가 얼마나 참을 수 있는 가 뭐 그런 것들이였다. 어찌 됐든 오메가들의 인권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반항하는 오메가는 잡혀서 실험체가 된다던가, 알파의 간택으로 속히 말해 승은을 입은 오메가들이 더욱이 오메가를 멸시 한다던가. 희망도 없었고 기대하는 바도 없으니 절망도 없었다.

 

'스스로 들어왔으니 감당할 자신은 있겠지'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피부색과 비슷한 새햐얀 천쪼가리를 걸친 수현은 결심을 굳힌 듯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약통을 받아들었다.

 

'히트사이클 주간이 다음주라고 했으니까..'

 

수현은 그때 생각을 하다 치를 떨며 다시 황무지 너머 지평선을 쳐다봤다. 다시 생각해도 지옥이였다. 오메가 삶에 더이상 어떤 최악이 있겠나 했는데 지옥이 있었다.

 

 

"가까이 오지마 죽어버릴테니까"

 

24시간 대기 상태로 아이와 노인들은 지하에 갇혀있고 젊은 청춘들은 안팎으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는데 이 사단을 만든 사람은 커터칼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고선 자신의 목숨으로 협상 중이였다.

 

"죽어. 오늘이 벌써 다섯번째 자살 기도 아닌가?"

 

경수는 소묘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그랬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그거 아파 종대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경수는 탄창을 채웠다. 종대는 언제 봤다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무관심하게 다정한척 하는 말에 기운 빠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어"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건 도경수의 얼굴. R센터 여기저기 붙어있는 현상수배서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얼굴. 제일 비싼 현상금이 걸린 현상수배범이였다. 모를리 없지. 오메가 혁명을 한다나. 자신과 상관 없는 일이였다. 자신이 오메가임에도 종대는 다른 오메가의 상황따윈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춘기가 되면서 발현된 오메가 히트사이클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저주가 되게 만들었고 종대는 히트사이클이 올때마다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자해가 자살시도까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을 막 앞둔 종대는 알파들만 가득한 고등학교에서 매번 위협 아닌 위협을 받았고 괴롭힘도 있었다. 종대네 집안이 대단하다는 것을 아는 집안 자제일 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나를 납치해서 무슨 이득이 있는데?"

"글쎄."

 

경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소파에 털썩 앉아버리며 퉁퉁거리면서 묻는 종대를 봤다. 어린 나이였다. 저 나이엔 저런 상처가 굳이 없어도 상처 받는 나이였다.

 

"일단 구경이나 할래?"

 

경수는 그렇게 말하며 페스트 드로우 홀스터에 총을 집어넣고 문을 열었다.

 

"재밌을거야"

 

소파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종대에게 그렇게 말했다.

 

"뭐 싫으면 쉬든지"

 

어깨를 으쓱하더니 경수는 나갔고 문이 닫혔다. 종대는 자신이 도망갈 거라고 생각도 안하나? 아니면 도망가도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생각하며 손목으로 눈을 가렸다.

 

 

"종대가 또 약을 가지러 왔나보네"

 

출근한 연구원들은 그렇게 말하며 흐트러진 연구실을 정리했다.

 

"불쌍하지 걔도"

"그렇다고 매번 약에 취해 있게 하면 돼? 나이도 어린데"

 

연구원들은 일상이라는 듯이 정리하며 종대를 입에 올렸다. 베타로 구성된 연구원들은 중립적이였고 그래서 연구원으로 많이 뽑혔다. 오메가에게 감정이입도 하지 않았고 한다 한들 잠깐 지나가는 감정이였다. 백현이 특이한 케이스였지

 

"파일 하나가 없어졌어"

"샘플도 사라졌어"

"종대가 이런 것 같지 않은데?"

 

연구원들은 이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경비를 부르고 상관에 보고를 했다.

 

"비상이다."

 

씨씨티비를 돌려 본 모두는 침묵했다. 약에 취한 종대가 괴한에게 납치되는 영상이 재생됐고 괴한이 보여준 것은 두개의 손뿐 그마저도 손가락만 보였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있는 흉터 그것 하나만이 보였다.

 

"군사들을 모집하고 수사관들을 불러 누군지 당장 알아내라고 해"

 

종대의 아버지는 억제제를 독점으로 판매하는 kinn회사 소유주였고 R센터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였다. 부잣집 자제들이 오메가인 경우 거래를 잘해서 자신의 입지를 잘 다져놓은 바람에 가장 영향력있는 기업이기도 했다. 오메가이나 자신이 아끼는 막내 아들이기도 했고 그것보다도 이렇게 허망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것도 kinn회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상황은 어때"

"아직까지는"

"다리는"

"뭐 낫겠지"

"변백현이 돌팔이라서 그래"

"너네 둘은 맨날 못 잡아 먹어 안달이냐"

 

수현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었다.

 

"진짜야 걔 돌팔이야"

 

경수는 진지하게 대답했고 수현은 더욱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경수를 처음 봤을 땐 상상도 못했었다. 자신이 거의 반쯤 미쳐 쇼크가 왔을 때 처음 봤는데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주사를 놓던 도경수의 얼굴. 도대체 어떠한 것들을 보아왔길래 저리 아무렇지 않은 표정일까.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자궁이 적출되고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까지 부러진 버려져도 이상할게 없는 그런 인생을 다시 살라 해준 것은 경수였다. 자궁이 없어도. 오메가여도. 다리를 절어도 사람답게 살아야한다. 그렇게 살 수 있다.

 

 

"대장이 무슨 생각인 것 같냐?"

 

찬열에게 여진이 물었다. 찬열은 그냥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말았다.

 

"애새끼가 무슨 담배야"

 

백현은 찬열의 뒷통수를 때리곤 꼰대처럼 말했다.

 

"아씨, 대장도 안 말리는데 뭔데 그러세요"

"하나 말아줘봐. 우리 찬열이가 말아준 담배 좀 펴보자"

"아 말아드세요"

 

찬열은 뾰루퉁하게 말하며 백현을 밀어냈다. 애새끼 주제에 어른인척은 다하려고 든다는 생각을 하며 백현은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자신의 흰 가운에 흙이 묻든 말든.

 

"넌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혁명군이 됐냐"

 

백현은 누워서 담배를 물면서 물었다. 여진은 라이터로 자신의 담배와 백현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따라 누웠다.

 

"찬희가 오메가잖아요"

 

찬열은 겨우 다 만 담배를 침을 묻혀 붙이곤 말했다.

 

"찬희가 찬희처럼 살 수 있었으면 했어요. 나랑 같이. 오메가니 베타니 알파니 나랑 상관없구요."

 

그러면서 자신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러는 형은요"

"좆같은 사회 나같은 인재가 한번 구원해야않겠냐? 도경수는 훼이크라고 도경수를 움직이는 실질적 보스는 나야"

"대장한테 함부로 말하지마요"

"이 도경수 앞잡이 새끼. 두고보자 이 새끼야"

 

백현은 찬열의 뺨을 힘 없이 살짝 치면서 일어나서 연구실로 들어갔다. 찬열은 인상을 쓰며 망나니같은 인간이라 했다.

 

 

"구경은 재밌었나?"

 

경수는 다시 제 방으로 들어와 아까 그자리 그대로 있는 종대를 보며 말했다. 자신이 나가고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둘러봤으면서 안 그런척 하는 것이 귀엽기까지 했다.

 

"배고플테니 아침 먹으러 가자"

"굶어죽을거야"

"오래 걸릴텐데"

 

경수는 의도치 않게 비아냥 거렸다. 자신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였지만 상대방은 항상 조롱하는 건가 싶게 만드는 그런.

 

"네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나본데"

 

경수는 종대에게 빠르게 다가와서 종대의 두 손을 잡아 자신의 밸트로 묶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당장 죽여줄 수도 있지만 그건 너만 좋은 일이고."

 

경수는 밸트와 상들리에를 연결해 천장에 종대를 달아버리고서 식사는 조용히 하는 것이 좋다며 입에 자신의 손수건을 밀어넣었다.

 

"친절하게 대해 줄 때 잘해. 종대야. 알아서 보내줄게 털끝하나 안 다치게."

 

종대는 발과 고개로 난리를 쳤지만 경수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소리를 질러도 손수건이 막아서 들리지 않았다.

 

 

"혁명군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혁명군이 납치한 것 같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괴한이 침입 한 것도 모잘라 혁명군이라고?"

"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전면전이다."

 

속보가 R센터 전곳에 떴다. 괴한이 납치하는 장면과 혁명군의 짓이라는 것. 오메가들은 오메가 나름대로 자신들이 그나마 이런 삶도 향유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업에게 왜 저런 짓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 떠들었고 베타는 왜 골치 아픈 짓이지 했고 알파들은 자존심 상해했다.

 

 

"저러다 죽겠다"

 

종대가 잡혀온지 삼일이 지났고 저렇게 묶인지도 삼일이 지났다. 수현은 인상을 썼다.

 

"독한 새끼야 그만해"

 

백현까지 치를 떨며 경수에게 뭐라고 한마디 했고 경수는 그저 으쓱거리며 지도를 보고 있었다.

 

"지독한새끼"

 

수현과 백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나갔고 종대는 원망섞인 눈빛으로 경수를 쳐다봤다.

 

"힘들지"

 

경수는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이제 배가 좀 고플거야"

 

경수는 그렇게 말하며 종대에게 다가가 밸트에 묶인 손을 풀어줬다. 종대는 아려오는 손목을 부여잡고 뛰쳐나갔다.

 

"야야 다쳐"

 

나가자마자 백현과 수현에게 막힌 종대는 잡혀들어와 경수 소파에 다시 앉게되었다.

 

"좀 씻고 싶기도 하지?"

 

경수는 약간 어르듯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씻겨줄까 씻을래?"

 

경수의 말에 종대는 한껏 째려보며 욕실로 들어갔다.

 

"재수없어 씨발"

 

종대는 있는 힘껏 욕을 내뱉었다.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죽기전에 저 새끼부터 죽여버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한창 씩씩거리면서 씻고 나오자 경수는 셔츠차림에 얇은 멜빵 그리고 홀스터를 매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입고 나와"

 

옛날에 이미 없어진 신문을 접으면서 경수는 마련해둔 옷을 가리켰다. 왜 자꾸 명령이야 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당한게 있으니 입을 삐죽대며 종대는 다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경수는 살짝 인상을 썼다.

 

 

"뭐야 쟤가 걔야?"

 

식사자리에 종대가 나타나자 군중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얘가 걔다."

 

경수는 간단하게 말하고서 급식판에 급식을 펐다. 감자 조각 몇개, 스프, 빵 그리고 단무지. 종대는 식단에 기함을 했지만 놀라지 않고 먹으리 다짐을 하고 조용히 경수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 술렁거리던 군중은 경수의 말 한마디에 금세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소문의 그 아이가 너무 마르고 가엽게 생겼었기 때문이였으려나.

 

"맛없지"

 

종대는 놀래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너무나 맛있게 먹는 다른 이들을 보았다.

 

"너보다 어린 애들도 불평을 안해. 이상하지. 난 이제 애기들이 불평하는 것 좀 보고싶어. 평범하게"

 

경수는 그런 말을 하면서 감자며 빵을 종대 식판에 더 얹어주었다.

 

 

그 식사 이후 경수는 종대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간간히 밥 먹자 하는 정도. 괜찮으니 나가서 공기 좀 쐐라는 말도 했었다. 종대는 이내 적응을 하고 부대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와 형은 이것도 안 해봤냐?

 

이내 찬희와 친해진 종대는 찬희가 보여줘서 처음 안 땅에서 하는 놀이를 같이 했다. 자신이 살던 R센터에는 흙이 없어서 흙놀이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종대였다.

 

"힛싸가 오면 어떻게 해?"

"주사 맞든가 약을 먹든가"

 

백현의 연구실 까지 점령한 종대는 백현을 귀찮게 굴면서 물었다. 백현은 귀찮아하면서도 이내 남동생 같이 챙기기 시작했다.

 

"그만한 재료가 있어?"

"없어"

"그럼?"

"죽는 거지 뭐"

"...?"

"장난이지.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못 죽어"

 

백현은 놀란 종대를 보며 피식 웃었다. 미워할 수가 없네 미워할 수가.

 

 

"아니 수현누나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종대가 마실 아닌 마실을 다니면서부터 돌아와서는 경수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됐고 경수도 그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묘한 습관이 됐다. 쫑알거리면서 R센터와 이게 다르고 저게 다르고. 모든 것이 새로운 아이의 벅찬 말을 듣는 것이 꽤나 나쁘지많은 않았다.

 

"날 왜 잡아왔어?"

 

쓰지않은지 오래된 침대에 누워서 종대가 가만히 말을 했다. 경수는 못들은 척 자료를 살폈다.

 

"백현이 형이 그러던데 누가 나를 갖다놓은지 모르겠지만 가만 안 두겠다고"

 

경수는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 하며 인상을 썼다.

 

"내가 목소리도 모를까봐"

 

종대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흉터가 자리잡은 경수의 손이 바쁘게 파일을 넘겼다.

 

 

굳이 종대를 납치해 올 필요는 없었다. 이미 실험 결과도 알고 있었고 신약 제조법도 훔친 상태였다.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에 죽이려고 했으나 이 모든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면서까지 데려온 이유.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 달빛에 처연하게 약을 주사하던 모습.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슬펐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약을 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죽이려고 잡았던 손목이 너무 얇았고 너무 아팠다. 어쩔 수 없이 데려왔다. 이성적인 도경수가 다른 이들에게도 숨기고 몰래 데려왔다.

 

"다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지"

 

종대는 슬퍼져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자신말곤 보지 못한 티비에서나 보는 더럽다고 짐승같다 일컫어지는 오메가들이 너무 평범했고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종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자신을 왜 무리하면서까지 데려와서 정작 자신으로는 아무 거래도 못하고 있는 도경수가 멍청하면서 싫으면서 좋았다. 자신 주변에 있는 어른이면서 어른 아닌 사람들과 달랐다.

 

"자"

 

경수는 불을 끄고 스탠드를 켰다.

 

"바보같아"

 

조용하게 종대가 흐느꼈다. 경수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종대에게로 다가갔다.

 

"곧. 평범하게 너의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경수는 종대의 팔뚝을 다독였다. 종대는 계속해서 울었다. 평범한 일상 같은 거 자신에겐 없었기 때문이였다.

 

 

종대가 혁명군에 들어온지 삼주가 넘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할 건데?"

"여기까지가 우리 목표야."

"거기까지 가려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몇 키로나 달려야하는데?"

"아니 나랑 쟤랑 달리고 너네는 여길 지켜."

"뭐 미친놈아?"

 

아무것도 모르는 백현도 미쳤다고 생각하는 작전이였다. 아니 작전이 아니라 이건 거의 자살이였다.

 

"여기 지하에 다른 마을로 가는 길이 있어. 오늘부터 움직이면 아이들과 노인들이 있으니 삼일뒤쯤엔 도착할 거다."

"아니 무슨 미친 소리 하냐고"

"그 마을에서 만나"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언제 이 전쟁이 가능할 것 같아서 시작했나 우리가?"

 

경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으나 경수의 말에 백현이나 수현 둘다 말을 잃었다. 그래 언제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나.

 

"최대한 많은 이들을 살려. 최대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것 같아 두개로 나누자"

"그치? 나만 저 새끼 미쳤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저 개새끼 혼자 멋진 척 하겠다는 거 아냐? 내가 그 꼴 두고 볼 줄 알고?"

 

백현은 궁시렁 거리며 다시 문을 발로 찼다.

 

"야 두개로 나눠"

"노크 모르냐"

"못들었냐?"

 

백현은 발로 문을 꽝꽝 차며 비아냥거렸다.

 

"어디서 잘난척이냐고 니가 목숨 두개야? 군인 애들도 많은데 지하 비좁아 새끼야"

"농담할 시간 없어"

"아 너랑 농담 안 해 재미없는 새끼야."

"경수야 아무리 생각해도 한 부대 정도는 너랑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수현은 경수를 설득시켰다. 차는 총 세대로 준비하고 한 차에 경수와 종대, 다른 차엔 부대 둘이 나눠서 타기로 이윽고 어떤 이들을 태우고 어떤 이들을 인솔시켜야할지 작전을 짜고 그대로 나눠 지하에 있던 이들은 이동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쾅콰아앙

 

헬기가 날아들었다. 경보기가 울리고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자주포 두대로는 한계가 있었다. 준비된 차량에 사람들이 속속히 탔다.

 

"이걸 두르고 날 따라와"

 

경수는 종대를 거의 감싸듯이 천을 둘렀다. 히잡처럼 둘러쓴 종대를 뒤로 하고 경수는 바주카포를 어깨에 이었다. 굉음이 고막을 나갈 듯이 울려댔다. 종대는 아비규환인 밖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김종대!!"

 

비행모를 쓰고 겨우 모래바람을 막으며 헬기에 바주카포를 쏘던 경수는 정신 못 차리는 종대에게 소리치며 다가갔다.

 

"김종대! 잘봐. 이렇게 죽어가면서 왜 전쟁하나 싶지. 오메가들 삶은 너처럼 특이한 경우 아니고서야 이미 전쟁이야."

"흐.."

 

종대는 패닉에 울기 시작했다.

 

"잘봐! 김종대!! 전쟁이 끝나면 평범하게 살아갈거야. 다른 알파, 베타 그리고 오메가 그런거 상관없이 모두가. 알겠어? 알아들어?"

 

경수는 주저앉은 종대의 멱살을 잡아 소리쳤다.

 

"살아. 살아야돼. 너를 위해 준비한 내가 만든 세계에서 너는 살아야돼"

 

경수는 종대의 얼굴을 더욱 가리면서 군용차 뒷칸에 올라탔다. 모든 이들이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대며 절규했다.

 

"박찬희!!!!"

 

찬열이 울부짖었다. 말을 듣지 않고 지상으로 올라와 일이 벌어졌다. 눈 앞에서 찬희가 끔찍하게 죽었다. 모두들 그 광경을 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냥 그렇게 봤다. 찬열이 그리고 종대가 그리고 다른 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질질짜는 새끼들은 다 죽여버릴테니까 입 닥쳐"

 

경수가 으르렁댔다.

 

"정신차리고 집중해. 박찬열."

 

경수는 독하게 말했다. 찬열은 콧물 범벅으로 울면서 이를 악물었다.

 

 

"잘 가고 있을까. 방금 위에서 무슨 소리 못 들었어?"

"겁도 많아 얼른 가자."

 

백현은 소중하게 자신의 짐을 들고서 중얼거렸다. 수현은 맨 뒤에서 여젼히 소총을 매고 엄호했다.

 

"도경수도 미친놈이지"

"그러는 너도"

"그러는 너는요"

 

백현은 고개를 저었고 수현은 사돈 남말한다는 듯이 말했다. 따지고 보면 다들 제정신은 아니였다. 우성 알파 주제에 오메가 혁명군의 수장인 도경수가 제일 이상했고 목숨 위험한 줄 모르고 kinn에서 거진 모든 정보를 훔쳐 달아난 변백현도 그랬고 kinn에서 실험체로 살다가 여성 오메가로써 자궁이 적출된 상태에서도 히트사이클이 오는지 그럴 때 남성 오메가처럼 일시적 자궁이 생기는지 실험하려고 자궁이 적출되는 것까지 겪은 상태에서 혁명군에 들어온 이수현이 그랬다.

 

"오늘은 여기가 캠프다."

 

수현이 말했고 아이와 노인들 그리고 임신한 오메가들이 텐트를 치고 자리했다.

 

"넌 이제 히트사이클이 없잖아"

"그렇지"

"그럼 그냥 평범하게 살지 너를 옥죄는 것도 없고"

"그게 평범할 수 있을까"

 

백현은 무거운 자신의 가방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실험도구들과 약들이 들어있어 아주 소중했다.

 

"애가 왜 갖고 싶었냐 그것때문에 너가 일평생 힘들게 살았는데"

 

백현은 담배는 몸에 안 좋다고 대신 사탕을 먹으라던 찬희가 챙겨준 사탕을 물었다.

 

"나는 내가 평생 힘들었어서 애는 안 낳고 싶다가도 내가 애를 낳을 때 쯤엔 세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막연하지만. 내 애가 알파든, 베타든 오메가든간에 그냥 내가 살아온 것 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을 살고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좀 더 받는 그런 아이일 수 있을거라고."

"..."

"그리고 널 닮았으면 조금 귀엽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

 

수현은 그런 얘기를 하면서 윙크했다. 백현은 예고도 없이 치고 들어온 수현에 놀래서 먹던 사탕을 떨어뜨렸다.

 

"야 뭐야, 너 뭐야"

"뭐가"

 

수현은 흐으응 하면서 웃었다. 백현은 정신 없는 듯이 굴었고

 

"너 지금 나한테 고백한거냐?"

"유치하게 무슨 고백이야"

"그럼 나 갖고 노는 거야 뭐야 뭐냐고"

 

백현은 혼란스러운듯 되물었다.

 

"우리 나이도 있는데 무슨 고백. 청혼이야."

 

수현은 마지막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야, 야.. 이..."

 

백현은 말을 잇지못하다가 도경수나 이수현이나 멋진 거는 다 해 쳐먹는다며 서럽게 울었다.

 

"이 땅 속에서만 나가봐 니가 상상도 못한 스케일로 청혼할거니까 기대해"

"크흣..알았어"

 

수현은 알았다며 우는 백현을 달랬다. 청혼 취소하라고 떼쓰는 백현을 어르고 달래서.

 

 

"비록 우리는 역사에 쓰여지지도 못할, 쓰여진다할지라도 역사에 한줄 정도로 기록될 혁명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가야한다. 그래도 살아남아서 다시,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다시. 폭도로 기록 될 지라도. 살아남아서 보자. 내가 내리는 마지막 명령은 살아돌아오는 것이다."

 

군용차들은 미친듯이 내달렸다. 모래바람 덕분에 헬기가 마저 쫓아오지 못했고 이 길을 여기서 몇 년을 보낸 이들보다 잘 운전할 수 없는 R센터 군사들을 잘 따돌려서 덕분에 숲까지 왔다. 숲 너머에 만나기로 한 마을이 있었고 경수는 모두 한명 한명에게 잘 가라고 군모를 쳐주었다.

 

"대장."

".."

 

마지막 찬열의 차례에 종대는 참지 못하고 뒤돌았고 경수는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자신의 품 속에서 사진을 꺼내 주었다.

 

"미안하다."

 

찬열은 사진을 부여잡고 무너져내렸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무너져 내려 오열하는 찬열을 바라보며 몇몇은 같이 울었고 다른 이들은 참으려 애썼다.

 

"이제 가. 가야돼."

 

경수는 그렇게 말하며 등을 떠밀었다. 대장은 어디가냐고 묻는 말에 나도 곧 간다. 하며.

 

우림속에 모두들 자취를 감추자 경수는 종대를 데리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우리 어디가?"

"..집에"

 

종대는 울음을 터뜨렸다. 집 같은거 가고 싶지 않았다.

 

"너는 너의 삶. 그리고 나는 나의 삶. 평범하게 다시 돌아가는 거야."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안 가고 싶어"

"어리광 부리지마."

"나 버리지마, 나 버리지마요. 흐..."

 

종대는 끌려가면서 그랬다.

 

"..괜찮아."

 

경수는 종대를 안심시키면서 눈을 마주치고 얘기했다. 머리 위로 헬기 소리가 들렸다.

 

"무섭니?"

 

경수가 종대의 눈을 가렸다. 종대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금방 끝날거야."

 

헬기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항복하라. 즉시 항복하라

 

"다시 데리러 올게."

 

그 말을 끝으로 딸각하며 총구가 경수의 머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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