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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yman IslandsKings Of Conven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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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계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나는 국방부 특수부대연구원 소속 다니엘입니다. 이번 달 말일을 기점으로 코드번호 ‘AM-2001’ 관련 연구가 완전하게 종료됨을 알리며, 당신에게 연구종료공고문을 비롯한 세 개의 서류를 동봉해 보냅니다.

 

  신청서를 제외한 서류는 확인 즉시 폐기 바랍니다.

  

 

  ……

 


  〈한국 국방부 특수부대연구원(KNDSF) 보고서〉

 

  작성 연월일 : NNDD - ND - NN
  타이틀 코드 : AM-2001, The Identification of Unknowns
  문서정리번호 : KNDSF - TIU - 0001 - AM - 2001 - 99
  자료청구번호 : KNDSF - TIU - 0001 - AM - 2001 - 82~99

 

  이 문서는 한국 국방부 산하조직인 특수부대연구원에서 ‘극비자료’로 분류해 보관해왔으며, 특별개정된 정보공개법에 따라 일부 관계자에 열람이 허용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특수부대연구기관(SFRI) 내 위치한 공문서보관소에서 자료청구번호를 통해 열람이 가능하다.

 

  이 문서에 기록된 일련의 조사는 당시 국방부 특수부대연구원 김광호 소장의 지시에 따라, (현 날짜체계로) NNDD년 12월 5일부터 NNDN년 1월 15일까지 진행되었다. L.제이콥 수석연구원과 황성주 수석연구원이 직접 조사를 진행했다. D.호퍼가 직접 생체실험을 주관했다. 전희태 수석연구원이 모든 면담을 진행했고, SS.도경수 가이드가 실험체를 관리했다.

 


  ……

  


  〈특수부대연구원(KNDSF) 본관폭발사건 보고서〉

 

  작성 연월일 : NNDD - ND - DN
  타이틀 코드 : National, KNDSF Explosion Incident
  사고 종류 : 국가보안법 관련, 약물 부작용
  사고자 : AM-2001(이하 센티넬 코드), Chen, Jong Dae Kim (*자세한 기록은 센티넬기록문서 참조)
  사건 경위 : NNDD년 9월 21일 오후 8시 경, 폭주제어불가 [-].센티넬로 인해 특수부대연구원 본관 폭발, 총 148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본관 내 연구소장 및 연구원 148명 전원 사망.
  문서정리번호 : KNDSF - KEI - 83 - 21
  자료청구번호 : KNDSF - KEI - 83 - 21~30

 

  *엮임문서 ‘[NNDD-8] 선술집방화살인사건’ 참조

 


  ……

  

 

 〈센티넬 폐기 보고서〉

 

  작성 연월일 : NNDD - ND - DD
  타이틀 코드 : AM-2001, The Identification of Unknowns
  개정 코드 : AM-2001-00, Sentinel Termination Report
  센티넬 코드 : AM-2001, Chen, Jong Dae Kim
  종류 : 03. Electric Energy
  등급 : SS > A > D > [-]
  폐기 일시 : NDND - 09 - 30
  냉동 기간 : NNDD + 40 years
  DNA 코드 : AM-2001-00-DNA-71, 380 gate 22-4
  문서정리번호 : KNDSF - TIU - 0001 - AM - 2001 - 99 - 4083
  자료청구번호 : None (문서 폐기 예정)

 

  ‘AM-2001’ 센티넬은 국가보안법 위반 및 살인죄로 최종 폐기를 선고받았으며, 오는 NNDD년 9월 30일 최종 폐기 진행 예정입니다. 각인은 최종 폐기 직후 언제든지 특수부대연구원에 제출해주시면, 가이드 본인 코드가 찍힌 신청서를 확인, 본인인증절차를 밟은 뒤 폐기해드립니다. 뒷면에 신청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최종 폐기 예정 센티넬과 가이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면이 불가합니다.

 


  ……

 

 

 나는 ‘AM-2001’ 센티넬 최종 폐기를 주관하는 다니엘이다. 이는 공식등록된 서류가 아니므로 수령인의 의지에 따라 처리가 가능하다.

 

  첸(AM-2001, Jong Dae Kim)은 오는 9월 30일에 최종으로 폐기된다. 이미 정식 계약은 끝났으니 찾아오든, 찾아오지 않든, 그건 당신의 자유이다. 다만 나는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 있다.

 


  ……
  ……
  ……

 


  “선생님!”

 


  작은 손이 노인의 밤색 코트를 붙들었다. 한참 가만히 멈춰서있던 노인은 이내 들고 있던 종이를 반으로 접으며, 제 코트를 잡은 어린 손녀를 내려다 보았다.

 

  “아빠가 빨리 들어오래요.”
  “아버지.”

 

  닫혔던 식당 문이 다시 열렸다. 아들로 보이는 남성이 노인을 향해 얼른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손녀는 노인의 코트에 매달린 채 신발을 질질 끌었다. 안에서 문을 밀어열고 나온 남성은 식당 문 앞에 허리를 짚고 선 채, 사고뭉치 딸을 가만히 쳐다보다 말문을 열었다. 할아버지한테 선생님이라고 하지 말랬지. 아버지도 경아가 또 그러면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남성의 진심어린 타박에 노인은 엷게 웃더니, 머뭇거리는 손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미지의 초상

  w. 하드보일드(@hardboild09)

 

 

 


  돌이켜 보면, 언제나 미미하게나마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

 

  잘린 시야로 요란한 까치집이 보였다. 경수는 모자를 눌러쓰고 나오다가, 현관 앞에 쭈그리고 있는 종대를 발견했다. 사실 발견이라는 표현까지 쓸 필요는 없었다. 오전 훈련 때문에 매일 똑같은 시간에 나가니까, 종대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저렇게 부스스한 모습으로, 저렇게 쭈그리고 있다.

 

  저렇게 앉아서 하는 일은 별 것 없었다. 현관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경수의 신발을 신기 편하도록 중앙에다 가지런히 맞춰놓는다. 그러다 경수가 방문을 닫고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더딘 속도로 들어올렸다.

 

  경수는 가지런히 정돈된 신발을 보고,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로 향해있는 종대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정적. 종대가 몸을 슬쩍 옆으로 치웠다. 경수는 별 다른 말 없이 신발에 발을 욱여넣었다. 발이 온전히 신발 안으로 들어가고, 뒤꿈치에 쓸려 접힌 신발 끝을 제대로 펴질 때까지, 종대는 그냥 가만히 보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경수는 그것이 무언의 신호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결국 지금까지도 이를 명확히 알아내진 못했지만. 

 

  “잘 가.”

 

  현관을 나서는 등에 대고, 종대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경수는 시덥잖은 인사에 눈썹을 약간 움찔했다가, 다시 뒤로 돌아섰다.

 

  의무적으로 팔을 뻗었다. 의무적으로 팔을 뻗어서, 의무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치집이 진 머리를 꾹꾹 내리누르듯이. 종대는 머리를 어설프게 쓰다듬는 손을 얌전히 타고 있다가, 별안간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씩 웃었다.

 

  “이것도 일지에 써?”
  “……”
  “이것도 가이딩인가?”

 

  질문 세례에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매정하게 떨어져 나갔다. 대답을 바란 건 아니지만서도, 정말 대꾸 한 마디 없었다. 종대는 머쓱했는지, 요란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문을 밀어 여는 경수의 등을 끝까지 시선으로 따랐다.

 

  경수는 단번에 문을 밀어 열고 나가서, 바닥에 신발 코를 두어 번 박고, 문을 닫기 전에 종대를 흘깃 보았다.


  “안 써.”

 

  뭘? 안 써? 아, 일지에 안 쓴다고?

 

  묻기도 전에 문이 확 닫혔다. 일순간 숙소 내부가 조용해졌다. 인기척 없는 적막의 공간에서, 종대는 여전히 쭈그린 채로, 머리를 위로 쓸어올리며 웃었다.

 

  “무섭네.”

 

  정말 정들까봐.

 


  ……
  ……
  ……

 

 


  종대는 모두에게 기형으로 여겨졌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리고 종대는 기형이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연구원에 파견된 지 딱 이틀 만에, 경수는 훈련을 하다가 연구원에게 첫 호출을 받았다. 사실 주머니에 넣어둔 호출기가 여러 번 울렸는데도, 경수는 그걸 모른 척 했다. 가기 싫어서였다. 그 얼굴이 꼴보기 싫어서. 근데 호출기가 중간에 끊기지도 않고 장장 5분 동안 울렸고, 연구실에 있던 연구원이 뛰어내려왔다. 그러더니 그는 경수를 붙잡고 딱 한 마디 했다.

 

  폭주했다구요, 지금.

 

  경수는 종대의 가이딩을 맡게 된 이후로, ‘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악랄하고 부질없는 존재인지 깨달았다. 세상만물을 정말 신이 만든 거라면, 저런 기형적인 놈한테 저런 힘을 주진 않았겠지. 누구나 생각이 있다면 저런 괴물 같은 존재에게 저런 힘을 부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가제어조차 불가능해 모두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에게, 모두보다 뛰어난 능력을 주었을리가 없지. 세계멸망이 최종 목표가 아닌 이상.

 

  한번 폭주하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모든 게 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이성을 잡고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에 직면하지만, 실제로 약과 훈련으로 자가제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폭주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폭주할 때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한 뼘 남짓한 면적에 올라선 채 사방을 둘러싼 무언가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리고 종대가 그 상태에 들어서면, 어떤 가이딩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연구원에서는 종대만이 유일하게 미지의 표본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경수는 모니터 화면 속 종대를 보고, 망설임 없이 훈련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종대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같은 숙소를 배정받았지만 그 얼굴이 보기 싫어 숙소에 들어가지 않았다. 첫 날은 그랬다. 너무 싫었다, 김종대가. 보기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아서.

 

  종대는 폭주할 때 눈에 강력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연구원들은 일순간 모든 에너지가 위로 쏠리면서, 안구 쪽으로 상상하기 벅찬 통증이 몰리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훈련장 안쪽을 둘러싼 유리들은 이미 산산조각 나있었다. 종대의 몸 주변으로 전기가 튀는 게, 얼핏 육안으로도 보였다.

 

  경수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씨근거리는 뒷모습을 향해 걸었고, 그 순간 지금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날을 떠올렸다. 경수는 종대의 머리채를 세게 잡아 당기는 동시에 손으로 종대의 두 눈을 가렸다. 종대는 고개가 뒤로 젖혀진 채로 휘청대다가, 핏줄 선 손으로 경수의 팔목을 붙들었다.

 

  “그냥 죽지 그래.”

 

  경수가 서느렇게 중얼거렸다. 종대는 경수에 기대어 있다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힘 없이 씩 웃었다. 이마에서 시작된 핏물이 두 눈을 가린 경수의 손등을 타고 길게 흘렀다. 그마저도 경멸스러웠다.
 

 

 

 

  경수는 가까스로 폭주를 멈춘 종대를 연구실에 보내고, 연구소장의 부름으로 소장실로 올라왔다. 경수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종대는 특별격리조치된 대상이기 때문에 폭주 직후에는 신체변화 측정을 위해 반드시 연구실로 보내야 한다고 지시 받았다. 거기서 뭘 하는지는 경수도 모르고, 일단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한때는 꽤 우수한 센티넬이었다고 한다. 전기 에너지를 다루는 능력이 연구원 내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이었던 데다, 자가제어능력이 아주 우수해 모두가 그 잠재력을 인정해왔다. 그 당시 종대는 연구원에서 유일한 SS급 센티넬이었다. 연구소장이 직접 훈장을 수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을 정도로.

 

  그런데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등급이 대폭 하락했다. SS에서 A로, 그 다음에는 D, 그리고 등급 자체가 무의미한 상태까지 왔다. 자가제어도, 자가회복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연구원은 이 갑작스러운 이상징후를 종대의 ‘한계’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등급이 하락하다가, 일련의 사건을 거쳐 위험인물로 간주돼 특별격리조치됐다. 그 일련의 사건은 연구원과 일절 관련이 없던 경수에게도 꽤 조잡한 잔재를 남겼다.

 

  소장은 예의 치레 경수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영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틀 전에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예.”
  “그 애가 방금 전에…”
  “듣던대로 형편 없습니다.”
  “그래, 그렇죠? 우리도 감당을 못하고 있으니까.”

 

  연구원에서도 두드러지던 존재라, 연구원 소속 가이드 중에서는 종대를 충분히 가이딩할만한 실력이 없었다. 대부분 하루 이틀을 버티다 나가 떨어지기 일쑤였고, 결국 기관 측에서 경수의 할아버지를 통해 따로 가이드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가이딩 능력은 주로 핏줄을 타고 전수되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대를 이어온 가문이 주도적으로 가이드를 전문 양성해왔다. 경수의 집안 역시 대대적으로 가이딩을 이어왔는데, 핏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SS급 능력치를 유지해왔다. 경수의 집안이 국가기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경수는 그 집안에서 1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고, 세 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다. 그녀는 경수보다 먼저 이 연구원에 파견됐었다. 1년 전에. 지금은 없지만.

 

  “몇 달만 부탁 좀 드릴게요. 양심 없는 부탁인 걸 알지만, 저렇게 뒀다가는 또 저번처럼, 그러니까 그런 사고가 또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시고.”
  “……”
  “어차피 곧 폐기될 가능성이 높은 실험체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마시고.”

 

  경수는 갑갑했는지 머리를 쓸어올리다가, 주머니에서 울리는 호출기를 꺼내들었다.

 

  “가보겠습니다. 훈련이 있어서.”
  “어, 바쁘니까 빨리 가보셔야지. 조금만 수고해줘요.”

 

  애초에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보기 싫은 얼굴들이 너무 많았다. 경수는 목례로 인사를 대신한 뒤 소장실을 빠져나왔다. 문 너머로 소장이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그것이 분명 좋은 내용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연구원에서는 경수의 집안을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게, 경수 쪽에 협조를 요할 일이 많다 보니, 공공기관인 연구원에서 독자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단 이쪽에서 긍정적으로 협조하는 적도 드물고. 경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나누는 얘기를 잠깐 들은 적이 있다.

 

  누나도 여기 있을 때 이런 취급을 받았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기분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경수는 한껏 얼굴을 굳힌 채로, 호출기를 다시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종대는 왼팔 전체를 비롯해 가슴 안쪽까지 널찍한 화상자국이 있었다. 1년 전 방화 사건 때, 오랜 화염과 폭주의 여파로 왼팔의 혈관이 다 터져버렸다고 한다. 자가회복이 잘 되지 않아서, 지금까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살이 거뭇하게 죽었고, 손가락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너무 징그러워서 종대는 그 위에다가 넓게 문신을 새겼다. 그림으로 가려도 징그러운 모양새는 여전했다.

 

  종대는 자신의 왼팔을 싫어했다. 단순히 징그럽다는 이유로, 자신의 왼팔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경수는 그것을 보고, 무덤덤한 얼굴로, ‘본인이 자초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경수는 식당에서 종대를 마주했다. 폭주 이후 연구실에 다녀온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었지만, 경수에게는 종대가 잘도 보였다. 종대는 비어있는 테이블을 골랐고, 우연히 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식판을 내려놓기 전에 경수와 또 한번 눈이 마주쳤다.

 

  종대가 앉은 테이블은 막이라도 쳐있는 것처럼 모두가 알아서 피해갔다. 또 폭주하면 어떡해? 또 누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막연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종대의 주위를 둘러쌌다. 경수는 그것 역시 ‘본인이 자초한 일’로 여겼다.

 

  종대가 젓가락을 미적거리는 동안, 경수는 아직 몇 입 먹지도 않은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다는 게 조금은 거북하게 느껴졌다. 종대는 자기 옆으로 지나가는 경수를 조용히 눈으로 쫓았다. 들으라는 듯 식판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고, 종대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나갔다.

 

  종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저 눈을 굴려 경수를 쫓다가, 그 뒷모습을 사라졌을 즈음에는, 한 숟갈 크게 푼 밥을 어거지로 입에 욱여넣었다.

 

 

 


  종대도 알고 있었다. 경수가 자기를 경멸한다는 것. 하지만 그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소파에 앉아 노트북 타자를 두드리는 경수의 뒤통수를 보고, 종대는 들고 있던 컵을 소리나지 않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정해진 면담시간은 9시고, 경수는 그 전까지 일을 한다. 매일 자신이 맡고 있는 센티넬의 훈련일지를 작성한다. 종대는 격리조치 받은 대상인만큼 예외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 다음 종대의 하루 활동양식을 정리해두고, 9시 면담 후 면담 내용까지 추가로 작성해 제출하는 것이, 이곳에 오면서 경수가 전달받은 의무사항이다. 이 일을 몇 달이나 해야 한다. 그건 곧 저 얼굴을 몇 달이나 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

 

  9시가 조금 지나니까, 종대가 슬금슬금 소파 쪽으로 왔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눈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고, 일부러 신경을 안 쓰니까, 소파 옆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경수는 한참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다가, 시선을 잠깐 돌려 소파 밑을 보았다. 종대가 바닥에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경수는 다시 노트북에 집중하다, 다시 종대를 흘깃 보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정해진 시간에서 20분이 지났다. 그래서 저러고 있었나.

 

  경수는 노트북을 들고 일어섰다. 경수가 일어나니까, 종대도 덩달아 고개를 들었다. 종대는 아무런 언질 없이 부엌 테이블로 향하는 경수를 눈으로 열심히 쫓았다. 따라가면 되는 건가. 엉거주춤 눈치를 보고 있는데, 경수가 먼저 의자를 뒤로 빼내어 앉은 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와서 앉아.”

 

  아, 지시 떨어졌다. 종대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세웠다.

 

  경수는 면담 때마다, 연구원들처럼 딱 의례적인 질문만 했다. 그것은 경수가 받은 문서양식에 적혀있는 질문들이었다. 질문을 안 듣고도 저절로 답이 나올 정도로, 다른 연구원들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것들이었다.

 

  경수는 정해진 선을 지켰다. 더 넘어오지 않았다. 더 넘어올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종대도 같이 그 선을 지켰다. 실은 한 발자국 더 물러나있었다.

 

  “이번 주에만 여섯 번.”

 

  경수가 손에 들고 있는 펜을 건성으로 한번 돌렸다.

 

  “수요일에 세 번이고.”
  “……”
  “회복 속도는 저번보다 더디네.”
  “……”
  “약은 다시 바꾸는 걸로 하고.”

 

  경수는 억양 없이 말하며, 쥐고 있던 펜으로 면담 내용을 정리해 작성해나갔다. 종대는 얌전히 앉은 채로, 경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경수가 잉크펜 끝을 꾹 눌러 썼다. 그래서 글씨를 쓸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종대는 미동 없이 경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대로 하다간 폐기 당해.”
  “……”
  “알지, 너 폐기 대상인 거.”

 

  경수가 느릿하게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전 담당 연구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일지만 보더라도, 종대의 몸은 거의 죽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훈련 때 매긴 수치를 보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여전히 다른 이에 비할 바 없는 수준 그대론데, 그게 잘 제어가 되지 않고, 폭주 횟수가 늘어가고, 그러는 동안 몸은 계속 죽어간다. 서서히.

 

  “다음주부터 훈련장 나와. 나 있을 때.”
  “……”
  “시간 적어놓을 테니까, 그 타임에만.”
  “……”
  “사람은 그만 죽게 해야지.”

 

  그 말을 할 때, 경수의 눈매가 전보다 날카로워졌다. 경수는 그에도 답하지 않았다. 면담을 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경수가 하는 말만 들었다. 경수가 제 대답을 별로 원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괴물이에요.

 

  지금도 그렇듯, 예전에도 누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계속 해야 하는지, 그동안 왜 해왔는지,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지. 수많은 의문들이 경수에게 따라붙었다. 국방부 연구원에서 파견 요청이 온 시점은, 누나가 죽은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때였다. 파견을 나갈만한 사람이 경수밖에 없었고, 경수는 거절했다.

 

  그건 괴물이라고요. 경수야, 그 일은 불행한 사고였다. 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고였겠죠.

 

  나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까지, 그런 괴물들을 상대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보지마.”

 

  날카로운 시선이 종대에게로 향했다. 종대의 시선이 거북했다. 어딘가 넋이 나간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애달파보이는 시선.

 

  “…닮았네.”

 

  종대가 입술을 달싹이다,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경수와 같은 곳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처음 하는 말이었다. 경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을 말아 주먹쥐었다. 저런 말을, 저런 표정을 지은 채로, 자기한테 할 자격이, 쟤한테 있나.

 

  “닮았지.”
  “……”
  “너 때문에 희생되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지.”
  “……”
  “내 눈으로도 꼭 봤으면 좋겠다.”
  “……”
  “너 죽는 거.”

 

  경수는 서슬퍼런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화가 치밀어오르는 걸 애써 삼켰다. 이렇게 더 마주하고 있다가는 자꾸만 지나간 말을 하게 될까봐, 경수는 파일을 챙겨들고 먼저 일어섰다. 종대는 석고상처럼 그 자리에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다.

 

  “약 정해진 시간에 다 챙겨 먹어.”

 

  귀찮게 하지 말고. 덧붙이는 말까지 듣고, 종대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가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종대는 테이블 위에 있던 약 봉지를 하나 들고, 입구를 뜯었다. 그러더니 맨 입에 물도 없이 약을 털어넣고서,  그냥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씁쓰레한 것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힘주어 넘겼다. 마른 목 뒤로 알약들이 뻑뻑하게 넘어갔다. 어느 순간, 예고 없이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수는 항상 정해진 시간에 나갔다. 종대는 경수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씻고,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경수의 패턴을 따라, 종대는 경수가 방에서 나오기 전 현관 앞으로 왔다. 처음에는 현관 앞에 서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가만히 서있는 것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경수가 신고 나가는 신발을 가지런히 옮겨놓았다.

 

  잘 가라는 말 정도는 하고 싶었다. 그 사람의 동생이고, 그 사람이 떠오르니까, 조금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면 언젠가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 하지만 경수는 결코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태도였다.

 

  “……”

 

  모자를 챙겨나온 경수가 종대를 발견하고는 중간에 멈칫하고 섰다. 종대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경수는 모자를 마저 고쳐 쓰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현관에 있는 종대의 옆을 지나쳤고, 종대가 옮겨둔 신발이 아닌 다른 신발을 꺼내들었다. 신발을 신는 모습에서도 경멸이 느껴졌다.

 

  종대는 제 앞에서 매몰차게 닫히는 문을 보고, 멀거니 중얼거렸다. 잘 가.


 

 

 

  “따로 훈련한지는 꽤 됐는데, 잘하긴 해요.”

 

  종대의 훈련에는 책임연구원이 동행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하며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혔다. 종대에게는 언제나 동일한 구성의 훈련만 주어진다. 전기 에너지가 잘 통하지 않는 부도체로 구성된 훈련장 안에서, 그래픽으로 만든 가상의 상대와 함께 훈련한다. 몸이 점점 죽어가고 있으니, 최소한의 트레이닝은 필요하다는 경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훈련이었다.

 

  폭주만 하지 않는다면 종대는 아무런 문제 없이 멀쩡해 보였다. 연구원은 지루한 듯 기지개를 켜면서, 틈틈이 시간을 확인하다가, 때가 되면 버튼을 눌렀다. 종대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였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눈이 황망했다. 나시 아래로 드러난 왼팔이 사람의 것이 아닌 듯 거무잡잡했다.

 

  경수는 종대의 이전 훈련 기록들을 살피다가, 느릿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가이딩도 했었나봐요.”
  “네?”
  “센티넬인데 가이딩도 했었네요, 직접.”

 

  한가롭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연구원이 경수를 보며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지에 정확히 적혀있었다. Guiding safely suc.

 

  “3주 동안 계속이요.”
  “그랬었나?”
  “이런 사례는 들은 적이 없는데.”
  “아, 그게.”
  “등급이 떨어진 게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등급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점에 가이딩에도 성공한 기록들이 있다. 가이딩을 필요로 하는 센티넬이 직접 다른 센티넬을 가이딩한다, 라. 처음 들어봤다. 종대가 가이딩 능력이 있었다는 점 역시 한 번도 보고받은 적이 없었다. 경수가 일지를 한 장 뒤로 넘기자, 옆에 있던 연구원이 황급히 경수가 들고 있던 파일을 가져갔다.

 

  “아마 누가 잘못 썼을 거야. 확인 좀 해봐야겠네요.”

 

  연구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파일을 닫았다. 경수는 연구원에게서 시선을 돌려, 유리 너머의 종대를 보았다. 어떠한 의지도 없어 보이는 황망한 눈이 어느새 서늘하게 말라있었다.

 

  세상에 불필요한 인간, 괴물, 살인자.

 

  “……”

 

  땀으로 흠뻑 젖은 종대와 눈이 마주쳤다. 종대는 한번 눈이 마주친 이후부터, 한동안 경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더니 정색을 짓고 있던 얼굴이 천천히 풀렸다. 경수는 눈썹을 아래로 축 내리며 웃는 종대를 발견하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컴퓨터 화면에 뜨는 숫자를 받아 적으면서 생각했다. 김종대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날이 새로운 기점이었다.

 

  별관 맞은 편에 새로운 부도체 훈련장을 짓느라 공사가 한참이었다. 그 날 경수는 B-1 훈련장에서 S급 센티넬들을 대상으로 가이딩 훈련을 마친 뒤, 다른 훈련장으로 옮겨가는 길이었다. 당시만 해도 가이딩을 하는 가이드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에 잡힌 훈련 스케줄이 빡빡했던 것으로, 경수는 기억하고 있다.

 

  별관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는데 호출기가 울렸다. 종대가 있을 연구실에서 온 호출이었다. 급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또 폭주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종대는 열흘이 넘도록 폭주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신체리듬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돌아갔다. 마냥 죽어가던 몸이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들고 있던 파일을 옆구리에 낀 채, 한참 호출기를 들여다 보면서 걷는데, 갑자기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야외 훈련이 한참이었으니, 특별히 저에게로 향하는 소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굉음과 동시에 몸이 거칠게 뒤로 밀쳐졌다. 경수는 누군가의 팔에 안긴 채 넘어졌고, 등이 쓸리면서 뒤로 밀렸다. 두 몸이 매섭게 바닥을 굴렀다. 경수의 손에 들려있던 호출기가 화단 밖으로 튕겨나갈 정도였다. 사방은 먼지로 뿌얬다. 경수는 날카로운 파열음에 눈썹을 찌푸렸고, 잠시 멈춰있다가, 세게 내리감았던 두 눈꺼풀을 떠올렸다.

 

  가까이서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건 절박하면서도 다급했다. 허공에 가득하던 뿌연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바로 앞에 종대의 얼굴이 보였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일순간 경수는 할 말을 잃었다. 

 

  “너…”

 

  종대와 경수의 양옆으로 산산조각난 유리조각들이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두꺼운 유리가 산산조각이 날 정도라면, 그걸 직격타로 받은 종대도 멀쩡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종대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온 감각이 예민해진 몸이 계속 달아올랐다. 종대의 거뭇한 왼팔이 바닥을 짚고 있었다. 유리 파편에 베인 팔 안쪽에서 피가 나고 있었지만, 종대에게는 그 통증보다 다른 게 먼저였다.

 

  “…아파…”
  “……”
  “눈이 아파, 경수야.”

 

  열흘 만의 통증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온 감각이 예민해졌다면, 금방이라도 폭주할 가능성이 있었다. 공사장으로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진정해.”

 

  경수가 종대의 두 눈을 가렸다.

 

  “흥분하지마.”

 

  두 눈을 가리고, 종대가 숨을 고르게 쉴 때까지 기다렸다. 움찔거리는 어깨를 잡고, 눈을 가린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러다 종대의 몸을 끌어 안았다. 바닥을 지탱하고 있던 팔이 맥없이 굽혀졌다. 경수의 위로 순식간에 무게가 쏠렸다. 경수는 제 위로 쓰러진 종대를 끌어안고, 아직도 먼지가 핀 뿌연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 날 경수는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너가 정말 우리 누나를 죽였을까.

 

 

 

 

  “요새 난리에요. 센티넬 그거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패널들의 열띤 토론이 한창이었다. 센티넬과 가이드를 직접관리하는 특수부대전담부서가 20년 만에 다시 부활하는 사안에 대한 논쟁이 쉴 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들은 그릇에 질서정연하게 놓인 과일을 하나 집어 딸에게 내밀었다. 어린 딸은 아버지가 건네는 과일을 입으로 받아 물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계단 위로 뛰어올라갔다.

 

  다시 토론자들의 목소리가 선명해졌다. 아들은 포크로 과일을 하나 집어, 제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센티넬들한테는 가이딩을 해줄 가이드가 필요하니까, 정식으로 관리해주는 부서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노인은 펼치고 있던 신문을 접어 허벅지에 올려두고, 아들이 내미는 과일을 받았다. 부엌에 있던 아들의 아내는 2층에서 쿵쾅거리는 딸을 잡기 위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러기엔 폐단이 너무 많았지.”
  “음… 그렇긴 하겠네요.”
  “……”
  “잘 관리하면 될 텐데요. 아니, 누가 누굴 관리한다기보다는, 서로 돕는 거죠. 각자 욕심을 부리면 위험해지긴 하겠지만, 역시 공식기관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해요.”

 

  아들은 이제 올해로 서른이 되었다. 노인은 곰곰이 머리를 굴리는 제 아들을 말 없이 쳐다보았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찌 됐건 둘 다 일반인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 그걸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도록 하면요. 서로 관리하고,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살아가는 거죠. 서로에게 도움을 받는 거고요. 누가 더 우월한지, 누구에게 더 유리한지, 그걸 굳이 따지면서 상대를 이용하려고 목 맬 필요가 있나 싶어요. 결국 어쩔 수 없이 전부 다 같은 세상을 살아갈 건데요. 각자 욕심을 조금씩 덜어내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물론 이해의 문제가 남긴 하겠죠. 지금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괴물이네, 비정상이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나중에는 멋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일종의 히어로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제가 센티넬이었다면 한번쯤은 꿈꿨을 것 같아요. 슈퍼맨처럼 멋진 영웅이 되는 거.

 

 

 

 

  “슈퍼맨 같은 영웅이 되고 싶었어.”

 

  머리는 잔뜩 까치집이 진 채로, 종대는 테이블에 앉아 중얼거렸다.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사람들이 못하는 걸 내가 대신 해내고, 그러면서 나한테 있는 힘을 조금 더 쓸모있게 활용해보는 거지.”
  “……”
  “좋은 거잖아. 다 같이 웃으면서 사는 거.”

 

  그러더니 종대는 자기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거뭇해진 손은 이제 주먹을 말아쥐는 것마저 어렵게 되었다. 종대는 멀쩡한 오른손을 연신 주먹 쥐면서, 경수를 올려다 보았다.

 

  “살상무기가 되는 건 싫어.”
  “……”
  “누굴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싫어.”
  “……”
  “한때는 내가 조금 더 멋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

 

  끝말을 흐린 종대가 테이블 위에 놓인 약봉지를 들어올렸다. 입구를 뜯고, 입에 알약들을 털어넣었다. 경수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어 종대의 앞에 두었다. 종대는 물을 마시는 대신, 가볍게 웃어보인 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길래 어딜 가나 했더니, 또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신발을 반듯하게 맞추고, 중앙으로 옮겨놓는다.

 

  “잘 가.”

 

  등 뒤로 종대의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종대가 옮겨둔 신발에 발을 욱여넣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나가다 말고 다시 돌아오길래, 종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수를 올려다 보았다.

 

  느릿하게 팔을 뻗었다. 머리 위로 경수의 손이 닿았다. 종대는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경수는 머리를 짧게 쓰다듬었다가, 이내 손을 뗐다.

 

  “무슨 일 생기면 호출해.”
  “응.”

 

  종대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경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경수는 모자를 더 내리누르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을 밀어 열고 나갔다. 종대는 문 닫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멍하게 있다가, 경수가 쓰다듬고 간 제 머리를 한번 만져보았다.


 

 

 

  선술집방화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1년 전, 경수의 누나는 이 사건으로 죽었다. 경수의 누나인 경아는 1년 전, 지금 경수가 있는 국방부 특수부대연구원에 파견되었다. 이곳에서 경수처럼 주로 A에서 SS급 센티넬의 가이딩을 맡고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경아가 찾았던 선술집에 방화를 했다. 그 날 당일, 둘이 훈련장 앞에서 심하게 싸우는 걸 다수가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사건이 있기 일주일 전부터 둘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경수는 경아로부터 종종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특별히 이와 관련한 얘기는 아는 바 없었다.

 

  사건경위서에는 그 둘의 움직임이 적혀있었다. 20시 5분 경, 종대가 먼저 선술집에 들어왔다.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뒤, 술을 시켰고, (*센티넬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음주) 20시 55분까지 술을 세 병 가까이 마셔 거의 만취 상태였다. 경아는 21시 24분 경, 선술집에 들어왔다. 경아는 종대와 같은 방에 들어갔고, 방화는 그로부터 약 11분 후인 35분에 벌어졌다. 선술집 내 전등이 모두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일부가 폭발하며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가장 안쪽 방에 있었는데, 천장이 내려앉는 바람에 바깥쪽으로 나가지 못했고, 42분 경 종대만 혼자 불길 속에서 빠져나왔다.

 

  경수는 공문서보관소에 출입하는 또 다른 가이드를 통해 이 수사자료를 전달받았다. 이미 종료된 사건인 데다, 예민한 사안이라 누구에게도 열람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경수가 제 누나의 이름을 들먹이며 부탁한 것이었다. 그는 오늘 안으로 반드시 돌려놔야 된다며 전전긍긍하다가, 경수에게 이건 왜 찾느냐고 물었다.

 

  사건 경위는 경수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겹겹이 쌓인 종이를 하나씩 치워내던 경수는 중간중간 불타버린 제 누나의 물건 사진들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도 같았다.

 

  진전이 없었다. 경수는 팔짱을 낀 채 파일을 내려다 보다가, 파일 제일 아래쪽에 깔린 누런 종이들을 발견했다. 경수는 위에 쌓인 종이들을 크게 집은 뒤, 한번에 옆에 내려놓았다. 누런 종이들은 어딘가 태우다 만 것처럼 유독 낡았다.

 

  누런 종이에 적힌 내용은 당시 선술집 주인의 진술서였다.
 

 

  ……

 

  이하는 사건 당시 피해자와 피의자가 방문한 선술집을 운영하는 김OO(43세)씨의 녹취 진술서이다. 녹음 테이프 사용. 보고서 기록. 이 진술서에 관한 부대 자료 청구 번호는 KNDSF - KEI - 83 - 31~48 이다.

 


  NNDD-8년 8월 2일, 제가 운영하는 선술집에 피의자(Chen, Jong Dae Kim, [-].Sentinel)가 찾아왔어요. 21시 24분 쯤 되었을 겁니다. 왜 기억하냐면, 그 때 당시 몹시 화난 얼굴이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람이 카운터로 와서 사람을 찾았어요. 피해자(Kyung Ah Doh, SS.Guide)가 있는 방을 알려달라고 했어요. 근데 그 방은 제가 알려줄 수 없었어요. 저번 주에 예약을 받았던 방이었거든요. …… 있는 그대로 다 말해야 하는 거죠? 저번주에 황성주 씨(연구원)한테서 예약을 받았어요. 아마 여기서 일하는 연구원님일 거예요. 소장님과의 중요한 만남이니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고요. 저희 가게에는 높으신 분들이 많이 오니까, 그거는 절대 염려하지 말라고 했어요. 여하튼 …… 피해자는 20시 5분 쯤 왔었어요. 예약자 이름을 대면서 당장 방을 알려달라고 했거든요. 저는 안 된다고 했는데, 그 아가씨가 글쎄, 방을 다 뒤져보겠다고 덤벼드는 거예요. 저는 말렸죠. 근데 그 예약자, 예약하신 분이 먼저 방에서 나왔어요. 그 아가씨 보더니 자기가 데리고 들어갔어요. ……

 


  이전의 사건 경위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잘못 껴있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피해자와 피의자 옆에 적힌 이름이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경수는 서둘러 종이를 넘겼다.

 


  …… 싸우는 것 같았어요. 외국인(Dr.Hopper, 45세, Operating Surgeon)으로 보이는 남자가 먼저 밖으로 나갔어요. 아, 아까 연구원님이랑 소장님 둘만 온 게 아니라 외국인도 한 분 오셨거든요. …… 잠시 후에 피의자가 온 거예요. 급해 보였어요.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하느냐, 고 화내는 목소리를 들었어요. 아가씨 목소리였어요. 그 방에 여자는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 피의자가 그 목소리를 듣고 달려 들어갔어요. …… 그러다 30분 조금 지나서 갑자기 가게가 폭발했다구요. 너무 무서웠어요. 손님들이 다 달려나갔어요. 저도 달려나갔어요. …… 연구소장님이랑 예약자 분이 가게가 무너지기 전 제일 마지막으로 나왔어요. 저는 신고하려고 했는데 그 분이 신고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 예약하신 분이요. …… 저는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어요. 눈 앞에서 가게가, 그야말로 터져버렸다고요. ……

 


  그리고 다음으로 종이를 넘기기 직전, 고막이 찢어질듯한 강렬한 굉음이 경수의 귓가를 거세게 울렸다.

 

 

 

 


  “다들 내보내!”
  “호출! 호출 넣어, 빨리!”

 

  연구실 내부가 온통 난장판이었다. 경수는 소리가 나는 바로 옆 연구실로 달려와, 문을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경수의 주머니에 있던 호출기가 울렸다. 겁에 질린 여자 연구원이 경수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다른 연구원들에게 경수의 존재를 알렸다.

 

  종대의 면담 담당인 전희태 연구원이 들것에 실려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경수는 종대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누구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모두가 면담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경수는 문 앞을 가린 연구원을 옆으로 밀친 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찌릿한 것이 느껴졌다. 불이 나가버린 전등에서 스파크 튀는 소리가 들렸다.

 

  종대가 한쪽 눈을 가리고 서있었다. 경계심 가득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한껏 얼굴을 찌푸리고, 눈을 사납게 뜬 채로, 누구든 다가오면 죽일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면담실 안 테이블이 부서져 있었다. 의자는 형편 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폭주 직전이다.

 

  “김종대.”

 

  종대의 눈에 잔뜩 핏줄이 서있었다. 경수는 면담실 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종대에게 다가갔다.

 

  “진정해.”
  “……”
  “괜찮아.”
  “오지마.”
  “아직 아냐.”
  “……”
  “이리 와.”

 

  아직 폭주하지 않았다. 종대는 폭주하기 전, 자신의 눈에 통증을 느낀다. 폭주한 이후로는 그런 통증조차 느낄 수 없다. 경수는 종대를 향해 가까이 걸어갔다. 종대가 몸을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가, 숨을 가쁘게 내쉰 뒤, 천천히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왼쪽 눈의 혈관이 터져 빨갰다. 어떤 충격이 종대를 이렇게 폭주 직전까지 다다르게 한 건지, 경수는 가늠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괜찮아, 라고 말하려 했다. 종대는 경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힘겹게 경수의 몸을 끌어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다. 목 께에 닿아있는 종대의 간헐적인 숨결이 느껴졌다. 경수는 멍한 얼굴로 서있다가, 저도 느릿하게 종대의 몸을 끌어안아주었다. 몸이 떨리고 있었다.

 

  긴장이 풀린 종대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수도 덩달아 몸을 굽혔다. 종대는 무릎을 꿇은 채로, 경수에게 기대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면담실 안으로 연구원들이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경수의 품에 기대어 있는 종대의 두 팔을 잡아끌고 나갔다. 잠깐만요, 경수가 종대를 붙잡았지만 종대는 매섭게도 끌려나갔다.

 

  괜찮으세요? 경수는 제게 물어오는 연구원의 급박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끌려나가는 종대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몸에 감당하기 벅찬 충격이 느껴졌다. 두 손과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종대의 몸이 발작하듯 튀어올랐다. 500줄이야? 더 올려, 700줄로 해. 이 좆같은 새끼. 연구원의 지시를 받은 선임연구원이 난감한 얼굴로 볼트 수치를 더 올렸다. 종대의 몸 군데군데 붙여진 패드를 통해 전기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높은 수치의 전기 충격에 종대의 몸이 다시 한번 발작했다.

 

  폭주한 이후에는 항상 이곳으로 끌려왔다. 종대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패드를 연결하고 곧바로 전기 충격을 줬다. 종대가 가진 힘을 인위적인 충격으로 조금이나마 상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기로 충격을 주고 나면, 종대의 능력치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몸은 서서히 죽어갔다. 그럭저럭 윗선에서 바라던 바와 일치하는 성과였다.

 

  “그러니까 면담할 때 그 여자 얘기하지 말랬지?”

 

  종대의 힘 풀린 동공이 천장 타일을 향해있었다. 종대의 의지와 상관 없이, 몸은 여전히 충격의 여파로 들썩거렸다.

 

  “몰라, 씨발.”

 

  황성주는 흥분한 얼굴로 다시 한번 버튼을 눌렀다. 뿌연 김이 피어오르던 종대의 몸이 다시 한번 발작하기 시작했다. 황성주는 종대의 몸으로 충격이 들어가는 걸 보면서, 솜과 거즈로 이마의 찢어진 부분을 꾹 눌렀다. 

 

  “무슨 얘기했는데? 그 방화사건 얘기했어?”
  “아니, 그 얘기하다가.”
  “뭐 더 했어?”
  “알잖아, 요새 소장이 도경환 네 조지려고 머리 굴리는 거. 걔네 집안 조질 거라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길래, 농담 삼아 얘기 좀 했지. 근데 씨발, 저렇게까지 지랄할 줄은 몰랐지. 아, 씨발, 어차피 지금 있는 가이드 그 새끼랑 사이 안 좋다며?!”

 

  황성주가 분하다는 듯 거즈를 집어던졌다. 다른 연구원은 침대에 묶여있는 종대의 상태를 살폈다. 평소보다 더 길게 이어졌는데도, 종대는 가까스로 의식을 잃지 않고 있었다. 황성주가 다시 한번 버튼을 누르고, 종대가 발작하는 것을 보면서 허리에 손을 짚고 섰다.

 

  “거기가 얼마나 큰데, 어떻게 조지려고 그런대.”
  “뭐가 어렵냐. 민심 이용이지, 뭐.”
  “엉?”
  “그쪽에서 가이딩 능력을 빌미로 국가기관을 농락하고 반동을 조장한다,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국가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그들이 주도권을 잡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그거밖에 더 있어?”

 

  사람들이 무서워하니까, 그거 잘만 이용하면 그쪽도 제대로 조지는 거지. 아님 소장이 이거, 이거 하나 잡든가. 그 인간이 거기 집안 때문에 지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얼마나 전전긍긍이냐. 돈도 못 받아, 뇌물도 못 먹여, 정부지원금도 못 챙겨먹어, 본의 아니게 청렴한 생활 하고 계시니 꼭지 돌겠지, 뭐.

 

  종대의 몸에서 연기가 피었다. 동공은 여전히 천장을 향해있었다. 종대는 연구원들이 주고받은 대화를 들으면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경련하는 손가락에 어떻게든 힘을 주었다.

 

 

 


  어떻게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해요!
  아무리 그렇게 해도 …… 이식한 DNA에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부작용만 온다고요. 걔는 지금 몸이 망가져가고 있어요. …… 애초에 동의도 얻지 않고 한 수술이잖아요!
  센티넬은 센티넬의 능력만으로 충분히 버거운 존재에요. 근데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소파 옆 바닥에 앉아 약봉지를 뜯는 종대를 보았다. 그래도 약 먹는 시간은 잘도 지킨다.

 

  며칠 전, 또 다시 폭주 직전까지 간 이후, 종대는 말이 없어졌다. 원래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며칠 내내 얼굴이 굳어있었다. 이번 일로 징계를 받게 되어 훈련장은 물론이고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올 수 없게 됐고, 그 책임은 경수에게도 함께 주어졌다.

 

  경수는 노트북을 두드리다 말고, 손으로 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알약을 입에 집어넣은 종대가 경수를 흘끔 돌아보았다.

 

  종대는 올라오지 않고, 가만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올라와.”

 

  그러더니 경수가 말하고 나서야, 비로소 소파 위로 올라와 앉았다. 둘이 같은 집에 지내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보는 것이었다. 경수는 안경을 벗으며 피곤한 눈을 문질렀다. 종대는 물도 없이 알약을 목 뒤로 넘겼다. 금방이라도 걸릴 것처럼 식도가 뻑뻑했다.

 

  종대는 약을 넘기고, 두 손을 모은 채로 얌전히 앉아, 경수가 노트북 타자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면담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으니,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참이었다.

 

  “경수야.”

 

  종대가 경수를 불렀다. 경수는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응.

 

  “너.”
  “……”
  “내 편이야?”

 

  나는 네 편이야, 종대야.

 

  뜬금 없는 질문에, 경수가 노트북에서 시선을 뗐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종대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안.”
  “네 편이야.”

 

  경수가 다시 안경을 쓰고, 옆에 둔 파일을 뒤적이며 대답했다. 종대는 예상한 것과 달랐는지, 연신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경수가 종이를 내려놓고 종대를 흘깃 보았다.

 

  “내가 가이딩하는 동안에는.”
  “……”
  “너만 편든다는 게 아니라.”

 

  날 믿어, 내가 널 구해줄게.

 

  “경수야.”
  “……”
  “……”
  “…왜.”
  “나, 연구실 안 가게 해주라.”

 

  경수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올렸다. 경수와 눈이 마주친 종대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웃었다. 그 말이 가볍지만,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안 돼?”
  “……”
  “……”
  “안 돼.”

 

  이번 대답은, 종대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 알겠어.”
  “……”
  “나 방에 있을게. 천천히 해.”

 

  종대가 소파에 앉히고 있던 몸을 일으켜세웠다. 약봉지를 한주먹에 움키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경수는 종대가 들어가고도 한동안 미동 없이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다가, 쓰고 있던 안경을 빼면서 종대의 닫힌 방문을 흘깃 돌아보았다.

 

 

 


  종대가 앉아있는 테이블 다리가 짧게 흔들렸다. 종대는 숟가락을 쥔 채 고개를 들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너 또 사고쳤다며?”

 

  수석연구원에게 상해를 입힌 일련의 사건은 입에 입을 타고 퍼져나갔다. 예전에 같이 훈련을 받던 이들에게도. 종대도 예상한 일이었다. 다시 고개를 내리고 숟가락으로 밥을 푸려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센 힘이 테이블 다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정의, 정의 하더니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 응?”
  “……”
  “니가 말하는 정의는 민간인을 죽이는 거냐?”

 

  킬킬대며 하는 말도 무시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참아낼 수 있었다. 이런 비난은 역치 근처에도 다다를 수 없다. 종대가 무시하고 밥을 한 입 퍼먹자, 그는 꽤 자존심이 상했는지 종대의 식판을 아예 뒤로 빼내버렸다.

 

  종대가 다시 고개를 들기 무섭게, 이마를 툭 건드렸다.

 

  “이러면 폭주하는 거 아냐?”
  “……”
  “너 요즘 눈에 뵈는 거 없다며.”
  “……”
  “너 때문에 애먼 우리가 싸잡혀서 조롱당하는 건 알고 있냐?”

 

  아주 불가촉천민 됐어, 씨팔. 잘하는 척, 착한 척, 정의로운 척은 혼자 다 하고 다니더니 어쩌다 이렇게 됐어?

 

  센티넬은 자가제어가 안되는 위험 인물들이다. 센티넬의 폭주로 수십명의 민간인이 피해를 봤다. 사람이 죽었다.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격리조치해야 한다. 방화사건 이후로 종대를 비롯한 다른 센티넬들의 입지가 더 위태로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종대는 언제나 그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조롱 섞인 비난에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등급불가가 말이 되냐. SS 찍던 새끼가 D까지 찍고, 등급불가까지 먹으려면 진짜 무슨 짓을 해야 돼?”
  “누구랑 빠구리라도 뜬 거 아냐? 그래서 뭐 막 섞인 거 아냐?”

 

  입 안에 욱여넣은 밥이 목에 걸릴 것 같았다. 종대는 대답 한 번 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섰다. 이제껏 이런 식으로 자리를 피해왔으니, 지금도 피한다고 특별히 상처를 받을 것도 없었다.

 

  몸을 일으키는데, 뒤에서 누가 어깨를 눌러 다시 자리에 앉혔다. 종대의 바로 옆에 식판이 놓였다.

 

  “부러우면 니네도 빠구리 한번 떠.”

 

  경수였다. 경수는 종대의 옆에 선 이들의 가슴에 달린 등급 뱃지를 쓱 살피더니, 이번에는 얼굴을 차례로 훑었다.

 

  “꼭 떠야겠다.”
  “……”
  “아직 한참 모자라네.”

 

  덤덤하게 내뱉은 경수가 의자를 빼내고, 자리에 앉았다. 종대는 경수의 눈치를 살피다, 경수를 따라 다시 제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있으니만 못한 게 무슨 자랑이야.”

 

  태연하게도 말했다. 경수는 태연하게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종대를 힐난하던 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분노를 채 삭히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 경수에게 덤빌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도 못했을 것이었다. 종대와는 다르게, 앞으로도 계속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맞은 편으로 가.”

 

  경수의 말에, 종대는 순순히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자를 빼내어 앉고, 식판을 제 앞으로 끌어오면서, 종대는 몇 번이고 경수를 쳐다보았다.

 

  멀쩡해 보였다, 경수는.

 

  “나 소시지 주라.”

 

  종대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경수는 종대를 한번 째려봤다가, 자기 식판에 있는 소시지를 종대의 식판으로 모조리 옮겨주었다.

 

  밥을 먹는 내내, 경수는 고개도 들지 않고, 종대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종대는 그럭저럭 기분이 괜찮았다. 편을 들어줬다. 그러니까, 도경수가.

 

  “왜 가기 싫은데.”

 

  한참 밥을 먹는데, 경수가 문맥 없이 질문을 던졌다. 종대는 입에 있는 걸 오물거리면서 경수를 쳐다보았다.

 

  “연구실.”

 

  아. 종대는 오물거리는 걸 멈추고, 씩 웃었다.

 

  “그냥.”
  “……”
  “그냥 한 말이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든 혼자 감당하는 게 나았다.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혼자만 감당하면,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 필요가 없으니까.

 

  종대는 밥을 먹는 동안 수시로 제 왼쪽 팔을 살폈다. 제복 소매 아래로 거뭇한 팔이 드러나는 게 영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종대는 일부러 팔을 아래로 내리고, 한 손만 테이블 위로 올렸다. 복잡하게 얽힌 문신이 새겨져 있었지만, 그 아래로 화상의 흔적이 뚜렷했다. 종대는 그걸 볼 때마다 불현듯 숨통이 막혔다.

 

  “흉하지 않아.”
  “……”
  “가리지마.”

 

  경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없었다. 종대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식판에만 집중했다.

 

 

 


  언젠가부터 경수는 종대가 자신의 누나를 죽인 게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건에는 분명한 의문점이 있었지만, 비단 그것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보이는 애달픈 눈도 그랬고, 그냥 종대 자체가 그랬다. 그랬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랬을 것 같지 않다.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 죽이지 않았다.

 

  경수는 종대의 죽어버린 왼팔에, 진실도 함께 담겨있을 거라 여겼다.

 

  잘못된 진실을 바로잡고 싶어졌다.

 

  종대가 폐기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졌다.

 

  얘를 구해주고 싶어졌다.

 

  “경수야.”

 

  어느 날, 종대는 여느 때처럼 경수가 있는 소파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시계 초침 소리를 들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나한테 정 붙이지마.”

 

  종대는 그렇게 말하고, 경수를 보더니,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나 곧 폐기돼.”
  “……”
  “내가 매일 연구실에 가서 뭐하는 줄 알아?”
  “……”
  “전기 고문.”
  “……”
  “치료래. 한시간 씩. 무슨 치료인지는 모르겠지만.”
  “……”
  “믿겨져?”

 

  말이 안 됐다. 전기 고문은 뭐고, 치료는 뭔데. 경수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종대를 연구실에 데려가는 이유는 폭주 직후 신체 변화를 측정하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경수는 들고 있던 파일을 내팽개치듯 소파 밑에 내려두고 일어섰다. 

 

  종대가 입고 있던 옷을 들췄다. 살 아래로 시퍼렇게 죽은 혈관이 보였다. 군데군데 이상한 멍자국도 보였다. 종대는 경수가 들춰올린 옷을 끌어내리면서, 힘없이 웃었다.

 

  “원래 폐기 대상이었어.”
  “……”
  “정들까봐.”
  “……”
  “걱정돼서 미리 하는 소리야.”
  “뭔데.”
  “……”
  “…너 뭐야?”

 

  일전에 연구실에 안 가게 해달라던 종대의 말이 떠올랐다. 알아가려 할수록, 너무 많은 게 감춰져있다. 이 한 사람 뒤로 얼마나 많은 게 감춰져 있는 건지, 경수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누나, 네가 죽이지 않았잖아.

 

  “정들지마, 경수야.”

 

  너는 뭐야?

 

 

 


  감정을 정의할 수 없었던 그 날, 경수는 종대에게 키스했다. 유난히 지쳐있는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했고, 종대는 고개를 뒤로 빼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먼저 경수를 끌어안고, 먼저 키스했다.

 

  경수가 처음 키스했을 때, 종대는 웃었는데, 눈은 슬펐다.

 

  
  키스가 가이딩 효과는 더 좋다며.
  ……
  괜찮아.
  ……
  방금 폭주하기 직전이었어.
  ……
  더 해줘.
  ……
  입술이든 팔이든 전부 다.
  

 

  그 날, 경수는 종대의 왼팔에 몇 번이나 입을 맞췄다. 종대는 자신의 흉측해진 왼팔에 키스하는 경수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네 팔 보면서 누나 떠올리지마.
  응.
  그냥 내 생각만 해.
  응.
  다른 의미 부여하지마.
  응.

 


  ……
  ……
  ……

 


  시간에 묻혀있던 그 날.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안, 딸과 함께 외출했던 아들이 돌아왔다. 노인은 볼이 홀쭉해지도록 필터를 빨고, 재를 털어냈다. 아들은 아내와 딸을 안으로 들여보낸 뒤, 제 아버지가 있는 발코니로 나왔다.

 

  “추운데 왜 나와계세요.”
  “생각할 게 있어서.”
  “……”
  “잘 다녀왔니?”
  “네. 동물원은 처음이라 그런지, 경아가 많이 좋아했어요. 근데 오늘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느낀 건데.”
  “……”
  “경아는 각성할 것 같아요.”

 

  노인이 담배를 입에 물다 말고, 아들이 서있는 옆을 돌아보았다. 아들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중얼거렸다.

 

  노인과 아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둘이 내뱉는 담배 연기와 미세한 숨결이 느릿하게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아버지.”
  “……”
  “제가 각성하지 못한 게 안타까우세요?”
  “아니.”

 

  사실 노인은 평생 어느 누구도 각성하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도, 자신의 하나뿐인 손녀도. 이어내려오던 핏줄이 그 효력을 다했길 바랐다. 아들은 30년 동안 각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평생 각성하지 않길 바랐다.

 

  “전에는 저만 돌연변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지금은 또 지금대로 좋은 것 같아요.”
  “……”
  “저, 아버질 쏙 빼닮았잖아요.”
  “……”
  “아버지는 어떠셨어요?”
  “……”
  “가이드 하실 때요.”

 

  노인은 대답 없이 담배를 태웠다. 새 담배를 꺼내어 물고, 그 끝에 불을 붙이고, 필터를 빨 때까지.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불현듯 대답했다.

 

  “괴로웠지, 많이.”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노인은 힘 없이 웃어보였다. 그러자 아들도 제 아버지를 따라 소리 없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아, 김종대.”

 

  이희준은 국방부 특수부대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한 지 이제 2년 가까이 되었다. 경수의 누나와 함께 일하면서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경수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불운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도, 희준은 그녀의 장례식에 찾아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경수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긴 대화를 나누는 연구원이기도 했다.

 

  희준은 종이컵에 일회용 커피를 타다가, 경수의 앞에 놓아주며 자기도 자리에 앉았다.

 

  “알긴 알지. 같이 훈련해본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경아랑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
  “저도 이번에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 소식은 들었어.”
  “누나 사고 말이에요.”
  “……”
  “왜 이렇게 조작된 거예요?”

 

  경수는 희준이 준 종이컵을 두 손으로 쥐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희준을 떠볼 심산이었다. 일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수보다 오래 일했고, 이곳에서 일해온 연구원이니 분명 뭔가 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희준은 경수를 빤히 쳐다보다가, 씩 웃었다.

 

  “경수야.”
  “……”
  “나도 그 일은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근데 알잖아. 네 말대로 켕기는 게 있다 한들, 나는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직 나한테까지 내려오는 말들이 많지가 않다.”
  “……”
  “여전히 의문스럽긴 해. 내가 알기론 경아랑 경아가 맡았던 센티넬 둘 사이가 나쁘진 않았던 것 같거든. 근데 어쩌겠냐. 여기서도 그 얘기는 일절 금지니까.”
  “김종대에 대해서도 다 알아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희준이 경수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입에 대고 있던 종이컵을 천천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경수는 부러 눈에 힘을 주었다. 근육이 욱신거릴 정도로.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
  “아무리 그래도 사람인데,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
  “호퍼 씨는 연구원에 없더라고요. 1년 전에 떠났다던데. 그동안 여기서 그런 수술들 맡아서, 직접 집도하신 거예요?”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희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경수는 침착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에는 아직 열기가 한창이었다.

 

  “누나 일과 관련이 있어요. 알잖아요.”
  “……”
  “기록은 거짓말을 안 해요.”
  “…누구한테 들었어?”
  “황성주 연구원님이요.”
  “뭐?”
  “누나가 죽을 때 그 술집에 같이 있었던.”

 

  경수는 기억이 나는대로 잘라붙여 말했다. 자기 스스로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몰랐다. 희준은 초조한지 종이컵을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땀이 차는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그는 오랫동안 말을 아꼈다. 그러다 급하게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안색이 창백했다.

 

  “금기사항이야.”
  “……”
  “경아 사건에 대해서는 정말 몰라. 아무도 말 안 해줘. 당연히 추측은 해봤지. 이곳 금기사항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그 날이고, 하나는 김종대야. 너도 알겠지만.”
  “네.”
  “너희 집안 사람들 등에 언제 칼을 꽂을지 모르는 사람들이야, 여기 사람들은. 그 날 연구소장이랑 황성주 선배가 거기 있었던 걸로 봐선, 아, 너도 알지, 그러니까 경아가 여러 번 김종대에 대해 항의했었어. 아무래도 그 실험은 너무 비인간적이었으니까, 경아 입장에서는 두고보기 어려웠겠지. 근데 그게 사고…와도 관련이 있을 거라고 나 혼자 추측하긴 했어. 근데 경아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사람이 죽어가고 있잖아.”

 

  희준은 떨리는 손을 허공에 한번 털고, 담배 필터를 깊게 빨았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김종대도 연구소장 눈밖에 났었고. 그랬으니 실험대상이 됐겠지. 연구원들끼리는 걜 실험체라고 불러. 알아, 개같은 거. 걔 굉장히 우수했고, 그러니까, 시팔, 멀쩡한 사람 몸에 애먼 DNA를 이식해놔서, 체내 거부반응은 계속 일어나는데 대처를 할 수가 없었고, 근데 당시에는 그게 정말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눈엣가시였어. 너희 집안. 연구원에서는 그래. 지금도 그럴 거다.”
  “……”
  “그래서 가이딩이 가능한 센티넬을 만들고 싶었겠지. 너희 집안에 손 벌리지 않으려고. 결국 그 실험은 실패했지만.”

 

  연구소장은 처음에 종대를 ‘실험체’라고 불렀다. 그 때 경수는 그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니, 그냥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연구원에서는 어느 센티넬에게도 실험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데.

 

  “황성주 선배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
  “어차피 걔는 실패야. 자가제어도 회복도 안되는 쓰레기고, 더 가이딩할 필요 없어. 조만간 폐기될 거다. 경아도 그렇고, 나는 지금 여기 있는 네가 너무 걱정되니까, 걔 가이딩하지 말고 빨리 여기 관둬. 더 있어봤자 좋을 게 없어. 경수야, 나는.”
  “형.”

 

  희준은 얼굴이 빨개진 채 횡설수설하다, 경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경수는 세게 주먹쥔 탓에 핏줄이 선 오른손을 자신의 왼손으로 감싸쥐었다.

 

  “종대는 사람이에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하는 경수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종대는 누나를 죽이지 않았어요.”
  “경수야.”
  “걔는, 실험체가 아니에요.”

 

  경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구실을 나가는 경수를 보다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뒤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너 폐기 안 돼.”

 

  면담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 이맘때 쯤 되면 경수는 노트북을 닫고, 파일을 들고 먼저 테이블에 와서 앉곤 했다. 그 다음에 파일을 펼치고, 양식이 적힌 면담일지를 꺼낸 뒤, 손에 펜을 쥐었다. 펜을 돌리는 건 습관이라, 얘기를 나누는 동안 두어 번 펜을 돌렸다. 질문은 정해져 있다. 약과 훈련, 폭주 횟수, 신체검사결과, 뭐 그런 것들.

 

  그런데 경수는 오늘 파일을 열지 않았다. 펜을 쥐지도 않았다. 종대는 경수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아래 내려놓았다.

 

  “너 폐기 안 해.”
  “경수야.”
  “누나 사건, 다시 조사할 거야.”

 

  별 생각 없이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천천히 굳어졌다. 종대는 반사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너, 실험도.”
  “……”
  “내일 아버지한테 말할 거야.”
  “하지마.”
  “증거 있어. 충분히 가능해. 잘못된 거 다 바로잡아. 죄 지은 사람은 벌 받고, 죄 없는 사람은 죄 없이 살아. 안 어려워, 그거.”
  “하지마, 경수야.”
  “안 억울해?”
  “……”
  “왜 하지마. 지금 여기가 전부 다.”

 

  기형인데.

 

  지금 여기 있는 모두가 다 기형인데. 이렇게 기형적인 곳에서 어떻게, 얼마나 더 기형적으로 살아.

 

  기형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삶이다. 종대는 기분이 이상했다. 경수의 화난 목소리를 듣고, 화난 얼굴을 보는 게 과거의 어떤 날과 겹쳐졌다. 경수의 누나도 저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걸 어떻게 모른 척 해? 이렇게 살면 안 돼. 이건 잘못된 거야.

 

  종대는 두 눈을 내리감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떴다. 느릿하게 떠올린 눈꺼풀을 몇 번 깜박였다.

 

  그래서, 죽었지.

 

  “경수야.”
  “……”
  “정의에 목매지마.”

 

  종대는 평온하게 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나라가 너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지마.”
  “……”
  “나라가 너를 존중한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
  “너도 누나처럼 되고 싶어?”
  “김종대.”
  “넌 할 수 있는 게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나서면 어떻게 되는지 너도 봤잖아.”
  “……”
  “너 무모한 게, 참 누나를 닮았다.”

 

  일방적으로 쑤시는 말투였다. 부러 가장 약한 부분을 들춰내서, 그 부분을 사정없이 쑤시고 들어온다. 그렇게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면서, 그렇게 말하려고, 애써 평온함에 얼굴을 감추고,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경수는 한 번도 종대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경수야, 난 괴물이야.”
  “……”
  “내가 너희 누나 죽였어.”
  “제대로 말해.”
  “그 날, 살릴 수 있었어.”
  “……”
  “근데 살리지 않았어. 살리고 싶지 않았거든.”
  “……”
  “경수야, 너는 왜 내가 가이드한테 호의적일 거라고 생각해?”

 

  종대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경수를 쳐다보면서, 느릿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별 일 없는 듯 웃었다.

 

  “누구한테는 실험체고, 누구한테는 관리대상이고. 한곳에 가둬놓고 한쪽은 실험체 다루듯이, 한쪽은 짐승 다루듯이, 정말 지겹다.”
  “사실만 말해.”
  “그만 좀 해.”
  “……”
  “너도 연구원 사람들이랑 다를 거 없어. 도대체 무슨 정의를 구현하고 싶어서 이래? 너도, 저 사람들이랑 같이 일했어. 혼자 정의로운 척 나서지마.”
  “김종대.”
  “나한테 정붙이지 말랬지.”
  “구해준다고.”
  “……”
  “내가 구해준다고, 너.”

 

  날 믿어, 내가 널 구해줄게.

 

  종대는 그 말을 믿었다. 지금도 그 말을 믿는다. 하지만 그 말을 다시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그 사람의 동생에게서.

 

  바로잡는 게 가능했다면,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는 정의를 믿고 있었다. 그 정의가 자신의 등 뒤에 칼을 꽂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정의가 다수의 불의로 둔갑할 것을 모르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언가를 위해 모른 척했다. 때로는 불의를 묵인하는 게 다수의 정의를 위한 것이라 여겼으므로.

 

  종대는 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자신의 두 눈을 두 손바닥으로 가렸다.

 

  “누가 하던 말이랑 똑같다.”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면 불행해지던데.”

 

  왜 너희 누나의 죽음을 묵인했겠니.

 

  “제발 가만히 있어, 경수야.”

 

  불행해지려고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종대는 달아오른 두 눈을 가린 채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가만히 있어. 그냥 가만히 있어. 경수는 어떻게든 감정을 내리누르다가, 손에 집히는 파일을 벽에 집어던졌다. 파일 안에 꽂혀있던 종이들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질서없이 널브러졌다.

 

  기형적인 밤이었다. 그 날 모든 게 기형적으로 일그러졌다.

 

 

 


  매몰찬 화염이 사방을 뒤덮었던 날, 종대는 죽어가는 경아의 곁을 지켰다. 무너진 기둥을 받친 왼팔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멎어가는 숨을 함께 했다. 천장이 무너지고, 기둥이 무너지는 동안, 경아의 시체가 불에 타버릴까봐 온 몸으로 끌어안고 버텼다. 곧 누가 구하러 오겠지. 이 사람이 나를 구해주려 했던 것처럼. 온 몸으로 버티다 보면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경아가 숨을 헐떡이다,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배를 끌어안은 채 죽어버렸을 때도, 믿고 있었다. 종대는 줄곧 괜찮아지는 순간을 꿈꿨다. 아니, 사실 함께 죽어버리는 순간을 바랐을까. 

 

 

 

  

  그 날은 종대의 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거창할 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아닌 날’의 범주에는 들지 않을 수 있는 날이었다.

 

  종대는 겉옷을 챙겨입고 현관에 나왔다. 아직 경수가 나가지 않은 시간이었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종대는 굳게 닫힌 방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현관에 몸을 굽히고 앉았다.

 

  경수의 신발을 현관 중앙에 가지런히 옮겨놓았다. 훈련장에 나갈 경수가 평소처럼 신발에 발을 욱여넣고 나갈 수 있도록. 그런 다음에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겠지. 손을 뻗어서, 머리를 쓰다듬고, 나는 잘 가라고 말하고, 경수는 워낙 말수가 적어서, 이따금씩 ‘무슨 일 생기면 호출해’라고 말한다.

 

  적어도 이 기형의 세상에서 경수만큼은 불행하지 않길 바란다. 종대는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경수에게는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은 때때로 꿈에도 나타났다. 의지와는 상관 없이 수면 속에서 선연하게 재연되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 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후회할 것도 없었다. 그저 무뎌지지 않고 괴로워하는 게 최선이었다.

 

 

 


  지난 21일 오후 8시 경, 국방부 산하조직인 특수부대연구원 본관 건물이 폭발하는 사고로 건물 안에 있던 연구소장을 포함한 연구원 148명이 전원사망했다. 외부요인으로 외벽이 폭파되면서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의문의 외부적 요인과 더불어 연구원 내부 컨테이너에 보관하고 있던 의료용 산소·질소 용기들이 수십차례 폭발하며 화재가 일어났다.

 

  당시 폭발 순간을 목격한 누군가는 ‘큰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갑자기 불이 붙었다’며 ‘빠져나올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속도로 무너져버렸다’고 말했다. 불길은 옆 별관으로도 옮겨붙었지만, 연락을 받고 출동한 소방차에 의해 장장 3시간 만에 불길이 잡혔다.

 

  종대는 사건 현장에서 붙잡혔다. 가장 높은 수치로 폭주한 상태였기 때문에, 체포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잡힌 바로 다음 날, 국가보안법 위반 및 살인죄로 최종폐기 날짜를 확정받았다.

 

 

 


  대면 신청이 거절되었습니다. 경수는 일주일 내내 그 답을 들었다. 종대는 일주일 동안 찾아온 경수를 일주일 동안 거절했다. 그러다 8일 째 되는 날, 최종폐기절차를 하루 앞두고 경수의 대면 신청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그마저도 거절했다. 경수는 그 순간 꼭지가 돌아서, 대면실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로 마구 걷어찼다. 나와, 너 당장. 안 나오면 내가 진짜 너 죽여. 대면실 중간 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들이 경수를 말렸지만 소용 없었다. 경수는 굳게 닫힌 문에다 의자를 집어던졌다. 쇳덩이가 움푹 패일 때까지,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문이 열릴 때까지, 경수는 끊임없이 물건을 집어던졌다.

 

  경수가 대면실 한켠에 놓인 화분을 기어코 집어던졌을 때, 화분이 깨지면서 파열음이 엉망진창 그 공간에 들어찼을 때, 종대가 대면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웬 난동이야.”

 

  유리 너머로, 종대가 웃고 있었다. 경수는 씨근거리다가, 그 여유로운 웃음이 너무 좆같아서, 인상을 찌푸렸다. 종대는 손을 더듬거리다 의자를 찾고, 천천히 의자에 몸을 앉혔다.

 

  그 날의 폭주로 종대는 한쪽 눈이 완전히 멀었다. 한쪽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폭주했다고 한다. 남은 눈도 멀쩡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아, 이거…”

 

  경수의 시선이 자신의 눈에 머물러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종대는 머쓱한 손길로 제 눈을 가렸다.

 

  “보기 싫지.”
  “……”
  “나도 그래.”
  “왜 그랬어.”

 

  경수는 왠지 울 것 같았다. 기어코 눈이 멀어버린 저 사람의 삶이 애잔해서가 아니라, 건물을 폭파시키던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어서였다.

 

  종대는 경수를 올려다 보고,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그동안 나 가이딩 해주느라 고생 많았어.”
  “왜 그랬냐고.”
  “왜 그랬긴.”
  “……”
  “억울해서 그랬지.”
  “……”
  “살아있는 게 억울하고, 고단하고, 불행해서 그랬어.”

 

  남은 한쪽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초점을 맞추는 게 어려운지, 종대는 연신 눈을 깜박이다, 힘겹게 경수에게로 시선을 맞췄다.

 

  “구해준다고 했잖아, 내가.”
  “경수야.”
  “……”
  “나도 정의 구현 좀 하자.”
  “……”
  “너는 불행하지마.”

 

  나는 이미 불행하니까, 너는 불행하지마. 세상이 기형이라, 죄 없는 사람이 죄 없이 살기가 꽤 어렵더라. 

 

  종대는 잠시 눈을 길게 감았다. 그동안 경수는 눈가가 시큰했고, 이내 눈이 뜨거워졌고, 거기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종대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네 눈물 떨어지는 소리 들려.”
  “……”
  “나 너 좋아했어.”
  “……”
  “너는 모르겠지만 사랑도 했어.”
  “……”
  “내가 상상한 행복에 네가 있었거든.”
  “……”
  “너는 나한테 미련 갖지마.”

 

  이로써 종대는 완벽히 실패하게 되었다. 정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정들어버렸네.

 

  종대는 눈 뜨지 않았다. 계속 감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내리감은 눈 아래로, 곧게 뻗은 속눈썹이 보였다. 보이다가, 흐릿해졌다, 다시 보였다. 경수는 손등으로 열이 오른 눈을 꾹 눌렀다. 고여있던 눈물이 한꺼번에 흘렀다.

 

  “고마웠어.”

 

  경수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면실을 나갔다. 곧바로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대면실 밖으로 나왔다. 경수는 눈이 따끔거렸고, 대면실 바깥에서, 한동안 두 눈을 가리고 서있었다. 축축해진 손이 마를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은 미련으로 서있었다.

 

  종대는 경수가 닫고 나간 대면실 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계속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문 바깥쪽에서 아직 떠나지 않은 경수의 존재가 선연하게 느껴졌다. 문 바깥에 서서, 아직 떠나지 않았을 경수.

 

  …그래도 잘 가라는 말은 듣고 가지. 종대가 작게 중얼거렸다. 인사를 하고 싶었다. 경수는 듣지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국방부 산하조직 특수부대연구원 운영은 잠정중단되었다. 센티넬과 관련한 모든 연구 역시 중단되었다. 한동안 도경환이 임시센터를 꾸려 센티넬과 가이드를 전문양성했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센티넬과 가이드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임시센터 앞에 찾아온 사람들이 피켓시위를 했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존재는 몇 년간 뜨거운 감자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시간이 지나 잊힐 즈음, 이따금씩 센티넬의 사고들이 보도되었다. 폭주를 버티지 못한 센티넬들이 사고를 일으킬 때마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논란에 불씨가 붙었다. 수많은 센티넬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채 죽어나갔다. 또 다른 이유로도 목숨을 잃었다.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혀 희박한 가능성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센티넬과 가이드는 음지의 수단으로 접촉하며 위태롭게 상생해나갔다. 그러나 누구도 크게 불행하지 않았다.

 

  연구원본관폭발사건에 엮여나온 선술집방화살인사건은 가장 유력한 사건 연루자인 연구소장과 기타 연구원의 죽음으로 재수사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미해결 사건으로 정정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기형이었다. 그러나 덜 기형적이었다.

 


  ……
  ……
  ……

 


  “아버지 전화왔어요.”

 

  아들이 수화기에서 귀를 떼면서, 때마침 계단을 내려오는 노인을 올려다 보았다.

 

  “전화?”
  “급한 전화라고, 아버지를 찾으시는데요. 국방부에서요.”

 

  아들은 수화기 부분을 손으로 가린 채 난감한 듯 말했다. ‘국방부’라는 단어에서 아들 역시 전화의 목적을 대강 눈치챈 것 같았다. 일순간 뻣뻣하게 굳어있던 노인은 이내 계단을 마저 내려왔다.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거실 소파에 걸려있던 겉옷을 챙겨들었다.

 

  “아버지, 전화는……”
  “전화는 됐다. 간다고 전해.”
  “…그 분과 관련된 거예요?”

 

  왜 전화가 온 건지, 왜 갑자기 노인을 찾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는 그저 짐작했다. 그냥 전화가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짐작하고, 확신했다. 주름진 손이 어렴풋이 떨렸다. 노인은 급하게 외투를 챙겨입으며 집을 나섰다.

 

 

 


  노인은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다니엘이 보냈던 서류들은 집에 돌아와 바로 파기했다. 한 장만 남기고서.

 

  ‘폭주했어요. 20년 동안 냉동이 되었다가 의식이 돌아왔는데 갑자기 폭주해버렸습니다. 저희 쪽에서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어요. …… 마지막으로 DNA 추출한 뒤 최종폐기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 급한대로 계약 기록이 남아있는 선생님께 연락 드렸어요.’

 

  그가 있다던 방 안은 어두웠다. 전등이 모두 나가버린 탓에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 한 줄기 외에는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했다. 모두가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문 앞에서 전전긍긍했다. 폭발사건을 일으켜 최종폐기를 확정받은 위험인물이었으니, 모두 20년 만에 해동된 그의 폭주가 두려웠을 것이었다.

 

  노인은 그들을 지나쳐 손잡이를 잡았다. 문턱을 밟자 찌릿한 것이 느껴졌다. 노인은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힘들이 사정없이 주변을 에워쌌다. 그 공간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한 명만이 유일했다.

 

  이제 두 눈이 멀었을까. 노인은 침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몸을 굽혔다. 그리고 늙은 손을 그의 눈 위로 올렸다. 손바닥에 닿는 두 눈이 뜨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바닥으로 속눈썹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노인은 위태롭게 숨을 들이쉬었다.

 

  살이 죽어버린 거뭇한 그의 왼손이 천천히 노인의 늙은 손을 잡아쥐었다.

 

  그대로구나. 40년 전의 종대.

 

  “경수야.”

 

  힘없는 목소리가 노인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노인은 자신이 한때 경수였음을 깨달았다. 그에게 ‘경수’로 불렸던 그 시절이 깊숙히 묻혀있다 파헤쳐진 기분이었다.

 

  “잘 지냈어?”

 

  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웃었다. 종대는 경수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고, 떨리는 입술로 미소지었다.

 

  “여전히 잘생겼네.”

 

  거짓말을 하고.

 

  “미련 갖지 말고.”

 

  40년 전 그 때와 같은 말을 하고.

 

  그 다음에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불규칙하게 호흡하다가, 몸을 들썩이기도 했다. 손 밑으로 두 눈이 가려진 그가 온전히 죽어가고 있다는 걸, 경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잘 가.”

 

  그 말을 끝맺는 목소리가 힘겹게 떨렸다. 그래도 네게 잘 가라는 말을 하고 잠들 수 있게 되었네. 경수는 자신의 손을 붙잡은 거뭇한 손이 드디어 멸망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적에 잠겼다. 어쩌면 그가 고대한 순간이었다.

 

 

 


  나는 ‘AM-2001’ 센티넬 최종 폐기를 주관하는 다니엘이다. 이는 공식등록된 서류가 아니므로 수령인의 의지에 따라 처리가 가능하다.

 

  첸(AM-2001, Jong Dae Kim)은 오는 9월 30일에 최종으로 폐기된다. 이미 정식 계약은 끝났으니 찾아오든, 찾아오지 않든, 그건 당신의 자유이다. 다만 나는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 있다.

 

  20년 전, 그가 해동되어 잠시 깨어난 적이 있었다. 실험실패사례 기록과 관련해 DNA 체취를 지시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첸을 처음 만났다. 해동한 지 1시간 만에 깨어났다. 그는 눈을 떴고, 갑자기 한참을 울었다. 내게 다시는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게 자신의 왼팔을 잘라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그는 다시 냉동되었다. 그리고 곧 마지막으로 눈을 뜰 예정이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전부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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